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모인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주저함이 없었다. 능숙하게 물을 따르고, 섬세하게 다림질을 하며, 정교한 의료 보조까지 척척 해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화이트칼라의 ‘뇌’를 가로챌 때, 그래도 ‘손’은 인간의 성역이라 믿었던 안일함을 고백한다. 미국에서 치솟은 배관공 몸값과 국내 도배 학원에 줄 선 청년들을 보며 숙련된 ‘손의 시대’가 다시금 오려나 기대했던 건 명백한 오판이었다. 지난주 폐막한 ‘소비자가전쇼(CES) 2026’을 보며 기대가 아닌 공포를 느낀 건 과연 나뿐일까.
1958년 발표된 손창섭의 소설 ‘잉여인간’에는 전후 폐허 속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7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이 소설은 AI 시대의 섬뜩한 예언서로 읽힌다. 과거의 잉여가 망가진 사회 속에 일자리가 없어 ‘남겨진’ 존재였다면, 오늘날의 잉여는 기계의 압도적 효율성에 밀려 생산 과정에서 ‘삭제된’ 이들이다. 일자리를 잃어서가 아니라, 일 자체가 인간을 건너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 AI·로봇 시대의 ‘생산성’ 공식은 전면 수정되는 중이다. 전통적인 자본주의 시장에서 생산성은 노동자의 숙련도와 시간의 밀도에 비례했다. 이제 생산성은 ‘인간을 얼마나 덜 쓰는가’에서 결정된다. 인간의 숙련이 아닌 기술과 설비의 혁신, 자동화 수준이 생산성과 수익성을 좌우한다. 생산 과정에서 더 이상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 시대, 바야흐로 ‘신(新)잉여인간’의 탄생이다.
노동이 생산성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시대에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일론 머스크는 “AI와 로봇 기술이 발전하면 향후 10∼20년 내 일이 선택사항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부활로 낙관한다. 기계가 생산을 전담하니 인간은 창의적으로 잘 노는 것 자체가 미래의 생산성이 된다는 논리다. 기계가 흉내 내기 어려운 상상력이나 감정적 반응이 최후의 부가가치가 된다는 역설. 그 미래가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열릴지는 별개의 논쟁거리겠지만, 과연 그런 시대가 올까?
거실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며 웃고 있는 아이를 바라본다. 저 모습이 무기력한 잉여의 전조인지, 아니면 기계가 흉내 내지 못할 감각을 기르는 과정인지는 알 수 없다. 노동 생산성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며 살아온 이 40대 부모의 머리로는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미래의 문법이다.
박정경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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