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진 피아니스트,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음악을 오랫동안 질문 않고

서둘러 끝내면 깊이를 잃어

 

예술가엔 빠른 성공이 아닌

실패 뒤 다시 하는 자세 필요

 

빨리 만들면 쉽게 사라지고

오래 걸리면 오랜 시간 남아

내가 하는 음악은 시간예술이다. 음악은 속도를 견디지 못한다. 소리는 홀이라는 공간에 잠시 머물다 이내 사라지고,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연주는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 찰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랜 기다림과 반복이다.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을 전제로 태어나고, 적어도 내게는 시간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예술이다.

연주자는 시간을 다루는 사람이다. 박자를 세고, 흐름을 조율하며, 침묵을 감당한다. 무대 위에서 관객이 듣는 소리는 단 한 번 흘러가면 되돌릴 수 없지만, 그 이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이 축적돼 있다. 악보에는 음표와 쉼표만 적혀 있지만,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연습의 시간이고, 망설임의 시간이며, 때로는 포기하고 싶었던 시간이다. 음악은 그 모든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하나의 얼굴을 갖는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연주하며 같은 곡을 여러 시기에 다시 만나 왔다. 젊은 시절에는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데 급급했던 음악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져 오기도 한다. 예전에는 중요하다고 믿었던 해석이 더는 설득력이 없는 순간도 있었고, 미처 보지 못했던 단순한 한 음이 갑자기 음악의 중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음악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달라진 것은 나였다. 시간은 음악을 바꾸지 않았지만, 음악을 대하는 나를 바꿔 놓았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점점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기다림보다는 속도가, 과정보다는 결과가 더 중요해졌다. 예술 또한 예외가 아니다. 얼마나 빨리 성과를 냈는지, 언제 이름을 알렸는지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특히,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조급함이 일상이 되었다. 아직 성장의 한가운데 있는데도, 이미 완성된 모습을 요구받는다. 연습과 시행착오의 시간은 생략되고, 결과만이 앞당겨진다. 시간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정작 시간을 허락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이 조급함은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곡을 오래 품고 질문하기보다는, 빠르게 해석을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한다. 그러나 음악은 질문을 서둘러 끝내는 순간 깊이를 잃는다.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하고, 견고하지 않은 해석은 시간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연습이란 결국 시간을 들여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며, 그 설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으면 음악은 끝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다.

오랫동안 국제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해 왔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연주자들을 만날 때마다 늘 같은 질문을 내게 던지게 된다. 이 연주자는 앞으로 얼마나 더 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 변화를 기다려 줄 수 있을까. 콩쿠르는 분명 중요한 기회지만, 동시에 가능성을 너무 이른 시점에 하나의 결과로 고정시켜 버릴 위험도 안고 있다. 아직 열리지 않은 음악을 한순간의 연주로 판단해야 하는 자리에서, 외국의 유서 깊은 공연장에서 심사석에 앉을 때마다 늘 조심스러워진다.

교육 현장에서 보낸 시간은 이 생각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각자의 속도로 성장한다. 어떤 학생은 이른 나이에 빛을 발하고, 어떤 학생은 오랜 시간을 돌아가며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간다. 예술에서 이 차이는 결코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늦게 무르익은 예술이 더 깊고 오래 남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 왔다. 교육은 결과를 앞당기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지켜 주는 일이다. 기다림 속에서 스스로를 의심하고, 다시 믿고, 또다시 흔들리는 과정을 견디게 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생략한 채 얻은 성취는 오래가지 못한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성공이 아니라, 실패 이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을 투자한다고 말하지만, 예술에서 시간은 투자라기보다 동반에 가깝다. 곁에 두고 함께 늙어 가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친해질 수 없는 음악처럼, 예술가는 시간을 거치며 자신과 화해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법을 배운다. 그 과정이 없이는 어떤 성취도 결국 공허해진다. 시간은 예술가에게 가장 엄격하면서도 가장 정직한 스승이다.

총장 임기를 마치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온 지금, 학생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예전 같았으면 조급해했을 장면에서도 이제는 한 발 물러서서 기다리게 된다. 연주가 더디게 자라는 학생을 보며, 그 더딤 속에 숨어 있는 가능성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느린 음악을 믿는다. 서두르지 않고, 앞서가지 않으며, 제 속도를 존중하는 음악 말이다. 그 느림 속에서 비로소 소리는 자기 자리를 찾고, 연주자는 음악과 같은 시간 속에 머물게 된다.

살며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시간이 필요했다. 음악도, 사람도, 관계도 그러했다. 빠르게 만들어진 것은 쉽게 사라졌고, 오래 걸린 것은 오래 남았다. 음악이 시간예술이라면, 삶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템포로 완성되어 가는 존재일 것이다.

오늘도, 그렇게 흘러가는 느린 시간을 믿고 싶다. 그것이 음악을 통해, 그리고 삶을 통해 배운 가장 확실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김대진 피아니스트,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대진 피아니스트,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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