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새해가 시작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우리 경제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70원대로 치솟으며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실물경제로 전이되고 있다. 고환율이 수입물가를 밀어올리고 기업의 비용 부담을 키우는 만큼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는 점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최근 관세청이 발표한 ‘불법 외환거래 연중 상시 집중점검 계획’은 과연 번지수를 제대로 찾은 것인지 의문이다.
관세청은 수출신고액과 은행을 통해 실제 유입된 무역대금 간 편차가 지난해에 역대 최대인 1685억 달러나 된다며 이를 불법 자본 유출이나 변칙 거래의 징후로 보고 대대적인 조사를 예고했다. 수출기업 1138곳을 대상으로 한 전방위 압박은 환율 안정이라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경제 주체는 언제나 합리적 기대에 따라 움직인다. 환율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달러를 보유하는 것은 기업의 자산을 지키기 위한 지극히 합리적인 방어 기제이자 경제적 선택이므로 기업이 수출 대금을 즉시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달러 형태로 보유하는 것을 단순히 투기나 불법으로 몰아세워선 안 된다. 이를 강제적인 행정 조사로 옥죄려 든다면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고 기업 경영에 불필요한 공포심만 심어줄 뿐이다.
문제의 본질은 기업의 달러화 보유가 아니라, 왜 기업이 원화보다 달러화를 선호하게 됐는가 하는 데 있다. 화폐 가치는 근본적으로 통화량의 함수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시중의 통화량은 급격히 팽창했다. 2022년 초에 3600조 원 수준이던 통화량이 2025년 9월에는 4400조 원을 넘어섰다. 미국보다 훨씬 가파른 속도로 원화가 풀렸는데 원화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정부는 올해 경기 부양을 위해 700조 원이 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을 집행한다. 한쪽에서는 막대한 원화를 시장에 쏟아부으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환율이 오른다며 수출기업의 장부를 뒤지는 것은 모순이다. 이는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바닥의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걸레질하는 사람을 탓하는 격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넘쳐나는 원화에 있는데 그 결과인 환율 상승의 책임을 기업의 외화 보유 탓으로 돌리는 것은 본말전도(本末顚倒)에 가깝다.
이번 조사의 대상이 된 1138개 수출기업의 94%가 중견·중소 기업이라는 점도 뼈아프다. 기업에 가해지는 행정적 불확실성은 그 자체로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비용인데 체감 정도는 아무래도 중소기업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등 대내외 경제 환경이 악화 일로인 상황에서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수출기업이 본업에 집중하기보다는 세관의 조사에 대비해 서류를 꾸미고 소명하는 데 귀한 시간과 자원을 허비하게 해서는 안 된다.
환율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업에 대한 채찍이 아니라, 거시경제의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이다. 정부는 무리한 외환 검사로 시장을 압박하기보다는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통화정책으로 원화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정공법을 사용해야 한다.
수출기업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범죄시하지 않는 당국의 정책 운용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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