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논설위원

 

김정은, 한미 대화 요구는 무시

중·러 밀착 경제·군사 지원받아

동북아 신냉전 구도 주역 부상

 

트럼프 회담 제안 응할지 주목

先핵무력 기술 완성 주력할 듯

한미 공조로 군축회담 피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난해 외교는 한·미 배척, 중·러 밀착이었다. 한국에 대북 유화적인 진보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철저히 무시했다. 대북 확성기 철거, 라디오 송출 중단, 한미훈련 조정 등 갖은 유인책을 내놨지만 돌아온 건 막말뿐이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13일 “개꿈을 꾸어도 조한(남북) 관계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조롱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10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구애’도 뿌리쳤다. 북한에 대한 ‘핵 보유국(nuclear power)’ 지칭과 제재 완화 시사도 소용없었다.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노 딜’의 굴욕 때문에 트럼프가 확실한 보장을 해주지 않으면 나서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정은은 대신 중국·러시아와 연대를 강화했다.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2019년 6월 이후 약 6년 만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 협력을 복원했다. 지난해 9월 이후 북·중 교역이 급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군사동맹 과시 자리였다. 러시아에 1만5000명의 병력 파견과 전쟁 포탄의 60%를 제공한 북한은 석유, 밀가루 등 필수품과 전사자 2000명에 대한 1인당 20만 달러 보상금을 두둑이 챙겼다. 극초음속 미사일 등 첨단 무기 개발 지원도 받았다.

김정은의 행보는 동북아에 한·미·일 대(對) 북·중·러라는 신냉전 구도를 강화시켰다. 2013년 핵·경제 병진 노선을 천명하고 2017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은 다음 해 남북, 미북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로 제재 완화와 경제 지원을 얻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미·중 패권 경쟁 격화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회로 중국과 러시아에 밀착함으로써 군사·경제 협력을 이끌어냈다. 핵보유국 사실상 인정과 제재 무력화라는 실리도 챙겼다.

국내외적으로 자신감과 위상이 높아진 김정은이 2026년 트럼프와 새로운 거래라는 ‘도박’에 나설까. 연초부터 미국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와 이란·쿠바 등의 위기를 지켜본 김정은은 체제 안전의 보루이자 거래 수단인 핵무력의 양적·질적 개선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2023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기 생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핵 타격 수단의 다종화를 실현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지난해 기준 핵무기가 최대 150기(이상규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로 추정된다는 분석도 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에 대한 각종 지원 대가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과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이전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최대한 기술 이전을 받아 핵무기 고도화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성과가 필요한 트럼프는 4월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김정은과 회동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비핵화 전제 회담을 절대 수용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허들’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핵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한 군축회담을 제안하지 않는다면 김정은은 굳이 대화에 나설 유인이 없다. 트럼프가 사실상 핵 군비통제를 제안해 전격적인 협상이 이뤄질 수도 있다. 트럼프가 북핵만 인정하고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최악의 결과다. ‘트럼프 리스크’ 막기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전봉근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미북 협상 재개 및 ‘한국 패싱’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과 조기에 실무회의를 열어 공동으로 ‘북한 비핵화 로드맵’ 작성을 제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긴밀한 한미 공조로 대응하고, ‘한국형 비핵 평화 로드맵’에 대한 내부 컨센서스도 이뤄야 한다.

김정은에겐 국내적으로 올해가 체제 안정과 경제 발전의 시금석이 될 도전적인 해다. 5년 전 노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경제 개선 5개년 계획 실패를 자인했던 김정은은 이달 말 예정된 9차 당대회에선 성과를 자랑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예고한 대로 재래식 전력 강화로 핵무기를 뒷받침하는 ‘핵·상용무력 병진 정책’ 추진도 확실시된다. 4대 세습을 위한 딸 김주애 후계 구도 가시화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김충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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