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보아 ‘No. 1’

그 사람들은 왜 사이가 틀어졌나. 가까운 사람이 고까운(섭섭하고 야속하여 마음이 언짢은) 사람으로 바뀔 때 파열음이 생긴다. “나는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뒤늦은 진술에서 문제의 요인을 들여다본다. 서로 가까운 게 아니라 혼자만 가깝다고 착각한 거다. 일방로는 이래서 위험하다. 역주행까지 시도하면 사고는 필연이다.

가까운 사람과 쉬운 사람은 동의어가 아니다. 가까울수록 조심하고 배려해야 어려운 상황이 줄어든다. 노래마을엔 ‘Close to You’(1970·카펜터스)도 있고 ‘Close the Door’(2013·샤이니)도 있다. 가깝다(close)는 건 언제라도 닫을(close) 준비가 돼 있다는 거다. 섭섭하고 야속하게 만들어 디스(반감)에 휘감기면 폭로(Dis+Closure)가 시작된다. 그땐 좀 늦은 감이 있다. 한쪽이 닫히면 양쪽이 다친다.

파열음은 팡 터지는 소리인데 마찰음은 쓱 부딪는 소리다. 인간관계에 적용하면 마찰이 일어날 조짐이 보일 때 미리 보살피라는 교훈이다. 마찰음·파열음은 둘 다 불협화음 소속이다. 연주의 종류에 협주도 있고 합주도 있듯이 지혜로운 사람들은 협의도 하고 합의도 한다.

서두가 길었던 건 협의라는 단어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져서다. 협의 이전에는 논의가 있는 게 일반적이다. “당사(SM엔터테인먼트)는 보아와 오랜 시간 깊이 있는 논의를 거쳐” “25년간의 동행을 마무리하기로 협의했다” 이 문건의 작성과 발표에 당사자인 보아도 합의했을 터다. 논의 협의 합의. 인생 화음의 바탕에는 성의와 예의도 필수요소다.

가수와 MC로 승승장구하다가 돌연 유학을 간다며 종적을 감추더니 어느 날 컴퓨터 하나 들고 나타난 사람. SM(이수만)이 ‘흐린 기억 속의 그대’로 남겨지지 않은 데엔 그만의 남다른 분투가 있었다. ‘현진영 Go 진영 Go’ 그러나 너무 나간 게 문제였다. 가수의 재능과 재앙이 혼재하던 시절 방송사 매점 앞에서 지나가는 말로 “형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물으면 그는 엉뚱한 답변을 했다. “시간 나면 헤밍웨이로 오세요” 헤밍웨이는 그가 운영하던 월미도의 카페 이름이다. 나는 동문서답에서 ‘노인과 바다’의 명답을 읽었다.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어디 그뿐이랴. 그것은 크나큰 죄가 된다네”

프로듀서에게 발견은 기쁨이고 발탁은 보람이다. 능력이 없으면서 계약부터 하면 그건 키우는 게 아니라 가두는 거다. 20세기 말 이수만의 희망 리스트에는 한 소녀의 이름도 적혀있었다. “천재성 있는 아이를 찾았어요. 반드시 세계적인 가수로 키울 겁니다” 그 후 틈만 나면 홈스쿨링을 방불케 하는 커리큘럼을 자랑했다. 인성교육은 기본이고 각종 외국어, 발성, 안무 등등. 단기 속성이 아니라 장기 숙성이라는 점도 놀라웠다.

보아를 마침내 세상에 알린 노래는 ‘No.1’이다. ‘어둠 속에 네 얼굴 보다가 나도 몰래 눈물이 흘렀어’ 여기서 네 얼굴은 곧 내 얼굴이다. 어둠 속에 흘린 눈물로 우물 하나는 만들었으리라. 하지만 그 눈물 속에 잠기지 않고 보아는 스스로 헤엄쳐 나왔다. 그의 자작곡이자 인생곡 ‘Only One’은 그렇게 탄생했다. ‘어느 누군가는 눈물 흘리며 남겠지만 상처 주지 않으려고 자꾸 애를 써가면서 눈치 보는 네 모습 싫어 So I’ll let you go’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 이수만이 키운 소녀는 ‘아시아의 별’ ‘K-팝 후배들의 롤모델’로 등극했다. 그리고 이별의 시간. 한때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입바른 말은 권태의 가면이라 여겼다. 하지만 사랑하기에 보내준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은 내 옆에 자리를 깔아주는 게 아니다. 눈물에서 샘물로, 강물로, 바다로 나아가도록 길을 터주는 게 성장형 사랑이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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