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16) 전해갑 완주 아원고택 관장

 

BTS 통해 소개된 글로벌 성지

숙소·카페·갤러리까지 한 곳에

숙박 체험은 외국인 비율 60%

 

20대땐 음악 감상실 열며 사업

건축가·디렉터·지역 큐레이터

역할 넘나들며 공간 활력 더해

 

“한옥은 움직이는 이동식 정원

산에 얹으면 자연 훔칠수있어”

전해갑 관장이 아원고택 사랑채와 안채 한옥을 배경으로 고택의 유래를 설명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전해갑 관장이 아원고택 사랑채와 안채 한옥을 배경으로 고택의 유래를 설명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완주=박팔령 기자

한때 ‘전주를 풍요롭게’라는 뜻으로 전풍백화점을 만들었던 주역, 음악감상실만 7군데나 개업했던 ‘미다스의 손’이라 불렸던 남자, 전해갑(70) 관장은 지금 완주군 소양면 산기슭의 한옥 미술관 아원(我園)고택에서 방문객을 맞는다. 전풍백화점의 부도로 전 재산을 잃고 무일푼이 되었던 그가 다시 K-컬처의 첨병이자 지역을 살리는 인물로 재조명받는 이유는 단순한 부활담(談) 때문이 아니다. ‘한옥은 가구이자 조형물’이라 믿는 건축적 감각과 현대적 미디어아트 기술에 예술을 융합한 또 다른 K-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한 회생의 철학, 그리고 “좋아서 했다”는 꾸밈없는 신념이 오늘의 오스갤러리와 아원고택을 만들었다.

◇산속 갤러리에서 세계적 명소로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사 인근 종남산(終南山) 자락에 자리한 아원고택은 한옥 숙소뿐 아니라 카페, 미디어아트와 갤러리까지 어우러진 힐링캠프 겸 복합문화공간이다. 물론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는 한옥 숙박 체험은 백미(白眉) 중 백미다.

“한옥은 가구이자 조형물, 산중에 올려놓으면 비원이 됩니다. 사람들이 그 안에서 느끼는 게 힐링이죠.”

아원은 한 해 70만 명이 다녀가는 오성한옥마을의 알파요, 오메가다. 이곳은 당초 4~5가구만이 살던 산골 동네였다. 오성한옥마을에는 전 관장이 운영하는 아원고택과 함께, 제자가 운영하는 소양고택·두베카페, 친형이 직영하는 음식점 기양초(起陽草) 등 25채의 한옥과 카페·음식점 등이 어우러져 있다.

전 관장이 운영하는 ‘아원’은 ‘우리들의 정원’이란 의미로 2019년 그룹 BTS가 머물며 제작한 ‘2019 썸머 패키지’에 소개되며 글로벌 ‘BTS 힐링 성지’가 됐다. 당시 BTS아미군단의 관심 속에 유튜브 채널에서 1억 뷰를 넘길 정도의 인기를 끌었다. 경남 진주시 지수면의 250년 된 사랑채·안채, 조선 말기까지 전남 함평에서 서당으로 사용되던 한옥, 전북 정읍에서 150년 된 한옥까지 네 채를 옮겨와 지은 이른바 이축(移築) 한옥이 아원고택이다.

“아원은 정원이 먼저였고, 한옥은 나중에 얹은 거예요. 한옥은 가구처럼 해체해 옮길 수 있는, 움직이는 ‘랜드스케이프(landscape·조경) 정원’이에요. 파블로 피카소가 그랬죠.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뛰어난 예술가는 훔친다’고요. 전 한옥의 차경(借景·빌려오는 풍경)을 통해 자연을 훔쳤어요.”

이곳에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영상들이 연출되는 미디어아트센터와 현대적 뮤지엄 건축물 안 작품 전시실, 카페,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다.

특히 아원고택의 한옥 중 가장 큰 규모의 만휴당(萬休堂)은 대청마루에 앉아 눈앞의 종남산을 바라보는 것이 일품이다.

선비들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풍류를 즐겼던 ‘연하당’, 산 그림자가 내려와 연못에 수묵화처럼 비치는 ‘설화당’ 등 아원고택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완벽한 공간이다.

아원고택의 경우 카페와 미술관을 찾는 관광객이 대부분이지만 숙박체험을 오는 외국인 관광객 비율이 60%나 된다. 전 관장은 “하루 500명 정도 방문하는 데 한 달이면 1만5000명이 아원고택과 미술관, 카페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갤러리와 고택이 상·하층 구조로 조성돼 있는 아원고택 전경.  아원고택 제공
갤러리와 고택이 상·하층 구조로 조성돼 있는 아원고택 전경. 아원고택 제공

◇전주의 한 청년, 음악에서 공간으로

그의 시작은 건축이 아닌 음악이었다. 20대 젊은 시절, 음악을 좋아하는 취향을 살려 음악감상실 ‘호호호’를 열었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음악을 들으니 사람이 모이더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당시 전주 관통로 인근 간판에 ‘호’자가 들어가는 음악 감상실만 7개나 개업했을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편안한 공간에서 음악을 듣고 싶어 공간 기획 일을 시작했는데, 음악으로 일깨운 감각 덕분인지 손대는 공간마다 성공했다. 음악에서 배운 감성이 인테리어와 공간디자인으로 이어졌다. 지역의 유력기업인에게 픽업돼 백화점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전풍백화점의 흥망

30대 후반 젊은 시절, 전해갑은 전주의 대표 쇼핑몰 전풍백화점을 세우며 절정기를 맞았다. “그 큰 건물을 지을 때는 날아가는 새도 잡겠더라”고 회상한다.

하지만 오픈 직전 경영권 변동으로 위기를 맞았고, 결국 부도로 전 재산을 잃었다. “그때 처음 제로가 됐어요.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적도 없고 돈이 없어 쩔쩔 매본 적도 없을 만큼 잘나가던 시절이었는데, 그만큼 아프고 날카로운 실패였죠.”

그의 일생일대에 최고 전성기이자 뼈저린 실패를 맛보게 했던 전풍백화점이 그의 손끝에서 태어나고 사그라들었다. 이 경험은 이후 공간과 예술이 결합된 ‘문화적 재생’으로 방향을 틀게 만들었다.

◇오스갤러리, 부활의 서곡

전풍백화점 부도 후, 종남산 자락 저수지 한 끝에 틀어 앉아 누에고치를 키우며 양잠업으로 시름을 달래고 있었다. 이때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가 ‘산중 갤러리카페’였다. 서울 종로 화신백화점 철거 현장에서 가져온 적벽돌로 오스갤러리 건물을 지었다.

전주 한 초등학교 철거 과정에서 나온 폐목재를 더해 재생 자재로 만든 갤러리카페는 ‘살아있는 폐건축자재의 미학’을 보여줬다.

“(사람들이)처음엔 웃었지요. 인적 드문 산중에 갤러리를 만들고 더군다나 카페까지 운영한다고. 당시만 해도 갤러리는 미술작품만, 카페는 커피만, 음악감상실은 음악만 따로따로 생각하던 시절이라 문화적 감성이나 그 흐름을 앞서갔던 거죠.”

오스갤러리의 성공이 자신감을 되찾게 했다. 인근에 현대적 건축물로 갤러리를 만들고 한옥을 옮겨와 아원고택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를 지탱해 준 원천이 바로 오스갤러리인 셈이다.

해질 녘 물빛에 반사된 아원고택 안채의 야간 경관 모습.  아원고택 제공
해질 녘 물빛에 반사된 아원고택 안채의 야간 경관 모습. 아원고택 제공

◇‘좋아서 하고 성공했다’는 철학

그는 스스로를 ‘좋아서 한 사람’이라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었을 뿐이에요.”

이 단순한 철학은 40년 가까운 문화 경영의 중심축이었다. 오성한옥마을의 한옥이나 카페, 체험관 등은 그가 기획하거나 영감을 준 곳들이다.

지역민들은 그를 “완주의 미다스 손”이라 부른다.

지금의 전해갑은 백화점 오너도, 대기업 임원도 아니다. 버려진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건축가이자 디렉터 겸 지역 큐레이터’다. 그가 디렉팅하고 복원한 고택과 카페와 갤러리들이 전북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 예술인에게 일자리를 주며, 지역의 관광경제를 살리고 있다.

최근엔 완주군을 향해 “역사와 스토리를 입히고 자연을 활용한 디자인에 나서야 한다”며 ‘만경강 프로젝트’를 설파하고 있다. 특히 그는 “만경강 둔치 등을 이용한 둘레길과 올레길, 산책로, 명상길 등 반드시 디자인을 입혀 완주의 파크랜드로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팔령 기자
박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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