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남석 사회부장
공소청·중수청법에 여권 발칵
당청 갈등 불사한 강경론 득세
여당 당대표가 대폭 수정 공언
큰 사건이 나쁜 법 만들 위험성
무모한 검찰개혁론 경계해야
국민 안전·인권 보장이 최우선
지난 12일 법무부와 행정안전부가 공소청법·중대범죄수사청법 정부안을 입법예고한 뒤 여권과 법조계, 관련 시민단체 및 학계 등은 그야말로 벌집 쑤신 듯한 모습이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사의 수사권 완전 박탈)’ 진영의 긴급 기자회견과 긴급 토론회가 잇따랐다. 여당이 청와대·정부와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모양새라는 부담이 있는데도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직접 나서 ‘대폭 수정’을 공언했다.
이 와중에 유독 눈길을 끈 것은, 국무총리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 16명 중 한 명으로,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의 검찰 개혁 신중론이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 치사 사건 등에서 부당하게 형사사법의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재심을 통해 억울함을 푸는 데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검찰 등 수사기관과 싸워 온 그였기에, 그의 이의제기는 무게감이 다르다.
검수완박 진영은 정부안대로 공소청·중수청을 만들면 ‘검찰청 시즌 2’가 될 게 뻔하다고 주장한다. 중수청에 ‘검사-검찰수사관’과 비슷한 ‘수사사법관-전문수사관’을 두고, 중수청이 수사를 개시할 때 공소청 검사에게 관련 사실을 통보하도록 한 것은 검찰과 법조 카르텔의 기득권을 존속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검찰의 새로운 식민지’ ‘제2의 검찰청’ 등 자극적 표현으로도 모자랐는지 민주당 소속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을 표적에 올렸다. 검찰 출신 봉욱 청와대 민정수석은 사퇴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박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잇달아 올린 글에는 근본적인 질문이 담겼다. ‘당신들이 하려는 검찰 개혁의 목적은 무엇인가.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형사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것인가, 아니면 형사사법 체계에서 누구를 배제하거나 어느 직역을 무력화하는 것인가.’ 국민의 인권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개혁은 어떤 명분으로 포장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민생 현장에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맹목적인 검수완박 추진을 구경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재심 전문 변호사의 고뇌가 엿보인다.
목적의식을 상실한 듯한 급진적인 검찰 힘 빼기가 얼마나 모험주의적이고 무모한지 보여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2025년 경찰의 관리 미제 사건 수는 470만5768건이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의 직접 수사 범죄를 대폭 줄이면서 수사권 조정을 시행하기 전 해인 2020년의 366만511건에 비해 약 29% 늘었다. 이재명 정부 법무부가 최근 펴낸 검찰 보완수사 우수사례집 ‘죄는 잠 못 들게, 억울함은 남지 않게’에는 경찰 단계에서 왜곡되고 암장될 뻔한 사건들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 이 책은 형사사법 체계가 망가지면 국민에게 어떤 지옥문이 열리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가득하다. 경찰의 무성의한 사건 처리에 눈물 흘렸던 ‘세종시 집단 성폭행 피해자’는 책에서 “만약 모든 수사권이 경찰에게만 있고 검사는 기소 여부만을 따져야 했다면 저는 고통스러운 과거에 묶인 채 좌절해야만 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검찰을 대체할 새 수사기관이 출범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까. 이게 얼마나 허망한 기대인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여실히 보여준다. 공수처가 2020년 설립 후 5년여 동안 기소한 사건은 6건에 불과하다. 중수청을 78년 역사의 검찰 조직을 배제한 ‘전혀 새로운 수사기관’으로 만든다면 이 기관이 자리를 잡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가늠하기 어렵다. 보이스피싱, 마약, 온라인 성범죄, 산업스파이 등 하루가 다르게 고도화·지능화하는 조직형 범죄 양상을 생각하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영·미 법학계에서 자주 인용되는 ‘큰 사건은 나쁜 법을 만든다(Great cases like hard cases make bad law)’는 명언이 있다. ‘특수한 예외적 사건(hard case)’이 법의 일반 원칙이 될 경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이다. 연쇄살인마가 대중의 공분을 샀다고 해서 사실상 폐지된 사형제를 부활할 수 없듯이, 일군의 ‘정치 검사’를 때려잡겠다고 국가 수사 역량과 형사사법 체계를 실험대 위에 올려놔서도 안 된다. 그 피해는 결국 국가의 주인이자 국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인 일반 국민이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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