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문10답 - 韓日정상회담서 주목 ‘조세이탄광 사고’

 

1942년 우베 앞바다 탄광 붕괴

작업노동자 183명 사망한 사건

日, 2차대전 사기저하 우려 은폐

 

1991년 日 시민 주도 추모시작

펀딩 통해 6.5억 확보 잠수조사

지난해 ‘유해 4점’ 발굴 성과도

 

양국정상, DNA감정 추진 합의

셔틀외교 완전한 복원 평가 속

“다카이치, 韓中관계 경계 전략”

수몰 이전인 1933년 조세이 탄광 현장 모습. 해저에 10여㎞의 갱도가 거미줄 같이 뻗어 있다.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제공
수몰 이전인 1933년 조세이 탄광 현장 모습. 해저에 10여㎞의 갱도가 거미줄 같이 뻗어 있다.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제공

그동안 민간 영역에 머물렀던 조세이(長生) 탄광 수몰 사고가 지난 13일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정부의 공식 의제로 격상되며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이번 합의는 지난 80여 년간 방치됐던 해저 갱도 내 유해를 국가 차원에서 예우하고, 유족의 한을 풀기 위한 실질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과거사 문제 해결에 있어 인도주의적 조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양국의 공통된 인식을 바탕으로 도출된 결과라는 평가다.

1.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개요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는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 앞바다의 해저 탄광이 붕괴하면서 183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다. 사고 당일 해저 갱도의 천장이 바닷물의 무게와 수압을 견디지 못해 붕괴했고, 안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들은 대피할 틈도 없이 모두 수몰됐다.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채 80여 년 동안 바다 위에 솟은 두 개의 환기구만이 자리를 지켜왔다. 1991년부터 일본 시민단체와 유족들이 유해 수습을 요구했고, 2024년 9월 잠수 조사를 통해 갱도 입구가 확인됐다. 이듬해인 2025년 8월 잠수 조사 중 두개골 등 유골과 장화 등이 발견됐고, 현재 한국과 일본 정부 간 유해 수습 및 DNA 감식을 위한 공동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2. 당시 피해는

조세이 탄광 붕괴로 사망한 183명 중 조선인 강제동원노동자는 136명(약 74%)에 달했다. 전남 해남과 영암 지역에서 집단 동원된 경우가 많았다. 일본인 희생자는 47명이었다. 조세이 탄광은 바다 밑으로 갱도를 파 들어가는 해저 탄광으로, 당시 안전기준은 해저로부터 최소 47m 이상의 깊이를 유지해야 했지만 이 탄광은 37m로 안전기준을 지키지 않은 채 채굴이 강행됐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일본인 노동자들은 깊숙한 곳의 채굴을 꺼려 가장 위험하고 물이 많이 들어오는 막장(갱도 끝)에는 주로 조선인이 배치됐다. 또 탈출을 막기 위해 갱도 입구와 숙소에는 감시원이 상주했는데, 사고 당일에도 탈출로가 확보되지 못해 이런 감시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3. 사고 이후 일제와 탄광회사의 조치는

2차 세계대전 중 일제는 전시 사기가 저하될 수 있다는 이유로 수몰된 조세이 탄광의 갱도를 콘크리트로 봉인하고 사고를 은폐했다. 당시 갱도 안에 노동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있었지만 입구를 막아 이들을 산 채로 수장시킨 격이었다. 그러면서 강력한 언론 통제를 통해 ‘노동자 대부분이 구조됐다’는 식의 허위 기사도 내보냈다. 탄광회사 측도 기록을 폐기하는 등 은폐에 적극 가담해 조선인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명단조차 제대로 남지 않았다. 또 희생자 유족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나 보상을 하지 않은 채 전쟁 후 폐업했다. 1965년 한·일 협정 이후 일본 정부는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 배상 문제도 함께 해결됐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한·일 시민단체와 유족들의 유해 수습 요청도 무시했다. 결국 시민들이 자발적 모금으로 고용한 민간 잠수사들이 조사를 벌였다.

4. 2025년, 83년 만에 첫 유해 발굴

지난해 8월 25일 일본 조세이 탄광 바다에서 한국인 잠수사가 유해 3점을 건져 올렸다. 수중 수색 10개월 만의 성과로 1942년 수몰사고가 발생한 지 83년 만이었다. 다음 날에는 희생자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도 발견됐다. 두개골은 석탄가루로 거뭇하게 변해 있었고 아래턱뼈는 사라진 상태였다. 이날 잠수에 투입됐던 한국인 잠수사는 “주변에 또 다른 유골들도 보였는데 사람 뼈라는 걸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두개골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서 수습해 올라왔다”고 전했다. 일본 경찰은 첫 발굴 이틀 뒤인 27일 발견된 유해 4점 모두 사람의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연안 바닷가에 콘크리트 기둥으로 만들어진 조세이 탄광 환기구 ‘피아(Pier)’ 2개가 서 있다.  연합뉴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연안 바닷가에 콘크리트 기둥으로 만들어진 조세이 탄광 환기구 ‘피아(Pier)’ 2개가 서 있다. 연합뉴스

5. 갱도 입구 발견과 유해 발굴까지 누가 움직였나

유해 발굴은 일본 정부가 아닌 시민사회 주도로 이뤄졌다. 1991년 결성된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새기는 모임)은 수십 년간 사고 현장 조사와 추모 활동을 이어왔다. 이 단체는 별도의 일본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식 지원 없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확보한 자금 약 7000만 엔(약 6억5400만 원)을 바탕으로 전문 잠수 조사를 진행했다. 이 단체를 이끄는 이노우에 요코(井上 洋子) 대표는 “사고를 잊지 않으려는 시민들의 힘이 발굴로 이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에서는 관음종 종정 홍파 스님 등이 유해 발굴과 추모 활동에 연대해 왔다. 우리 정부는 희생자 유해를 발굴하는 데 기여한 일본 시민단체와 한국인 잠수사들에게 정부 훈·포장 수여를 추진할 예정이다.

6. 유족들의 요구 사항은 무엇인가

유족들은 이번 유해 발견을 계기로 △한·일 공동조사단 구성 △추가 유해 발굴 및 과학적 신원 확인 △유해의 고향 봉환 △국가 차원의 추모 사업을 요구하고 있다. 유족 측은 특히 민간단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장기간·고난도의 수중 조사와 유전자 감식에는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유해 발굴이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조사 범위와 방식,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유족들은 “이번 유해 발견이 또다시 정치적 고려로 묻히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조세이 탄광 문제가 한·일 과거사 전반을 대표하는 상징적 사안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7. 한·일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은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지난 13일 일본 나라(奈良)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조세이 탄광에 수몰된 한국인의 신원 확인을 위해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셔틀외교 복원 이후 한·일 정상이 과거사 문제에 첫발을 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언론발표에서 “이번 회담을 계기로 과거사 문제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낼 수 있어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세이 탄광에서 발견된 유골.  대한불교관음종 제공
조세이 탄광에서 발견된 유골. 대한불교관음종 제공

8. 일본 총리가 먼저 제안한 이유는

조세이 탄광 수몰 한국인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 추진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사도광산(佐渡金山) 문제 같은 과거사 핵심 현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한국과 협력이 수월한 문제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도광산 문제는 조선인의 강제 노동 인정 여부를 두고 양국이 여전히 대립하고 있지만, 조세이 탄광 문제는 인도적 성격이 강해 양쪽 이견을 좁히기 용이하다. 사고 희생자 중에 일본인이 있어 일본 시민단체가 먼저 움직였고, 일본 내 우익 세력 반발도 크지 않은 편이다. 아울러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하는 다카이치 총리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9. 앞으로 절차는

한·일 양국은 조세이 탄광에 수몰된 한국인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을 추진한다. 발굴된 유골이 한국 쪽 유가족 DNA와 일치하는지 전문 업체에 감정을 의뢰하고, 일부는 한국 쪽에 위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정부가 공동으로 DNA 감정을 마친 이후에는 한국인 유해의 국내 송환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 다만, DNA 감정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10. 다른 강제징용 탄광 현장과 우리 정부의 노력은

한·일 양국은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과 사도광산을 둘러싼 전시·추도 문제에 관한 갈등을 겪고 있다. 군함도는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내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24년과 2025년 2년 연속으로 일본 측 주관 사도광산 추도행사에 불참하고 별도 추도식을 열었다. 이외에도 다카시마(高島) 탄광, 미이케(三池) 탄광 등 일제강점기 한국인이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했던 시설에 관해서도 한·일 갈등이 여전한 상황이다. 정부는 조세이 탄광에 대한 양국 정부의 합의를 시작으로 강제징용 문제 전반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인 입장을 끌어낼 방침이다.

정선형 기자, 정지연 기자, 김유정 기자, 김대영 기자
정선형
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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