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의자는 역사적으로 ‘권력’의 상징이었다. 고대사회에서는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고 중세 유럽에선 신분을 증명하는 도구였다. 등받이가 높고 화려할수록 그 사람의 위계가 높았고 손님에게 의자를 내어주는 것은 최고의 예우였다. 영어 단어 ‘Chairman(의장)’, 조선 임금의 의자를 높여 부르는 ‘용상’에서 알 수 있듯, 의자는 권력과 지배를 의미했다. 이 권력의 의자가 산업혁명기에 대량 생산되면서 휴식의 상징인 동시에 훈육의 수단이자 규율을 내면화시키는 도구가 됐다. 최근엔 비만의 원인으로 비판 받기도 한다.

이 같은 의자의 역사와 전혀 다른 의자가 있다. 무소유의 삶을 살다 간 법정 스님의 입적 16주기를 맞아 서울 성북구 스페이스수퍼노말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붓장난’전에 나온 스님의 ‘빠삐용 의자’이다. 이는 권력의 상징도, 안락함의 도구도, 규율의 수단도 아니다. 그저 스님이 1975년 전남 순천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중건한 뒤, 이듬해 직접 참나무 땔감을 쪼개서 얼기설기 잇대고 서툴게 못질해 만든 의자다. 투박한 생김새는 스님의 무소유 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스님은 수행하고 사색하고 집필할 때 늘 앉는 이 의자에 빠삐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명의 영화 제목으로 주인공 빠삐용이 절해고도에 갇힌 이유가 ‘인생을 낭비한 죄’였다며 ‘이 의자에 앉아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가끔 제자들이 너무 낡았다며 편한 의자로 바꿔 드리겠다고 해도 자신을 깨어 있게 한다며 한사코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마주하기 위한 낮고 초라한 자리였던 셈이다.

2022년 이 의자를 본뜬 조형물이 스님의 모교인 목포상고 교정에 세워져 ‘시간은 영원하지 않으니 주어진 생을 소중히 아끼라’는 가르침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근현대 정신문화의 상징으로 예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우리는 늘 더 비싸고 안락한 의자, 남들보다 화려한 의자를 원한다. 하지만 정작 지금 자리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는 잊고 살 때가 많다. 여수 불일암을 떠나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를 한 빠삐용 의자는 우리에게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어떤 시간으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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