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500 돌파, 한국 자본시장 재평가 신호
‘코리아디스카운트’ 완화 의미
기업밸류업프로그램, 상법 개정 등 복합 요인
코스피가 역사상 처음으로 지수 5000을 돌파하면서 경제계에서 그 공과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있다. 코스피 5000 돌파는 기본적으로 수출 호조에 인공지능(AI) 산업 발달에 따른 반도체 호황, 자동차와 방위산업, 해운업 등 전통 수출 강호 기업들의 선전이 이어지면서 그 토대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과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 통과 등이 훈풍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코스피5000 어떻게 달성했나=22일 코스피 시장은 장이 열리자마자 단숨에 5000 지수를 돌파했다. 전날 미국 증시의 급등에 힘입은 바 크지만, 이미 국내 시장에서도 5000선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있어 왔다. 이번 랠리는 ▲수출(기업이익) ▲반도체 슈퍼사이클 ▲수급(외국인·기관) ▲제도(밸류업·상법)가 동시에 맞물린 결과로 정리할 수 있다. 펀더멘털 측면에서 지난해 12월 수출은 695억 달러(약 102조 원)를 기록해 전년 동월 대비 13.3% 증가했고, 무역수지는 122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같은 달 반도체 수출은 208억 달러(전년 동월 대비 +43.2%)로 월간으로는 역대 최대를 기록하며 지수의 이익 기대를 끌어올렸다.
증시 수급도 결정적이었다. 한국거래소 집계 기준, 지난 2일부터 21일까지 외국인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2조6210억 원을 순매수했고, 기관투자자 역시 6770억 원 순매수로 지수 상단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주주환원·자본효율’ 담론을 제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시행은 주가 상승의 토양분이 됐다.
◆코스피5000, 한국 자본시장의 재평가 신호=코스피 5000 돌파는 단순히 ‘숫자’를 넘어 한국 자본시장의 재평가 신호로 읽을 수 있다. 즉, 그동안 한국 증시를 괴롭혀 왔던 ‘코리아 디스카운트’ 징크스가 완화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만 하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는 한국 증시 저평가의 핵심 원인으로 꼽아온 지배구조·주주환원 이슈가 제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가장 크게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코스피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업종은 AI 인프라 확산에 따른 메모리(특히 HBM) 수요 급증의 수혜를 받는 반도체, 그리고 자동차·방산 등 수출 대형주들이다.
◆코스피5000 달성, 과연 누구의 공(功)인가=정치권에서는 코스피5000 ‘공(功) 경쟁’이 발열하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코스피 5000 돌파 직후 ‘경축’ 취지의 글을 올렸고,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주가 조작 엄벌, 자사주 소각 의무화, 주주 친화적 제도를 만들어 코스피 6000, 7000시대를 국민과 열어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코스피5000 달성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코스피5000 돌파 성과가 고스란히 현 정부의 공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번 성과가 전부 현 정부·여당 몫이냐”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있다. 주장의 근저에는 주가 상승 랠리의 가장 굵은 축인 반도체·수출 모멘텀이 이미 이재명 정부 이전부터 글로벌 AI 사이클과 궤를 같이해 온 기업 실적에 토대가 있다. 자유무역이 흔들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국내 대표 수출기업들의 노력으로 기업 실적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는 것이다. 주가 상승의 단초가 됐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이미 2024년부터 진행됐던 정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2024년 2월 26일 금융위원회가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를 통해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기업 가치를 끌어 올리기 위한 정책들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제도 설계의 시간축만 놓고 보면, 이재명 정부 이전 시기에 씨앗이 뿌려진 셈이다.
민주당이 밀어붙인 상법 개정이 증시 활황에 도움이 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상업 개정을 밀어 부친 근본 이유가 ‘주주보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명분보다는 재벌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 강화, 즉 기업 옥죄기에 더 비중이 실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실제, 현재 민주당이 주력하고 있는 경제 정책 상당수는 기업보다는 노조로 대표되는 노동자 우선 정책들이 많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나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노사 협상의 폭을 대폭 확대해 경영계의 반발을 사고 있는 ‘노란봉투법’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경영권 방어 등을 위한 제도 도입 등 기업을 위한 정책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진척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재계에서 요청했던 사안 중 민주당이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배임죄 폐지에 대해서도 기업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주가지수 급등이 실물 경기를 반영하고 있느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날 보도에서 코스피 5000 돌파와 함께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 -0.3%를 기록했다는 한국은행 발표를 인용하며 ‘시장 랠리’와 ‘경기 체감’ 사이에 괴리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임대환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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