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롱’ 받는 ‘Young Forty’… 2030과 친해질 수 있을까
10년전엔 ‘젊게 살려는 40대’ 지칭하던 신조어
나잇값 못하는 패션·행동으로 ‘혐오대상’ 전락
보수화된 2030남성들 비난하며 진보 외치지만
권위적·독선적 모습에 韓사회 새로운 세대갈등
2030 “알 수 없는 자신감 내보이는 것 짜증나”
“몇 년 후면 내 모습일것 같아” 공감하는 시선도
“1990년대에는 취향의 선구자로 칭송받았던 40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지난해 9월 아이폰 17 출시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영국 BBC 방송은 지난 18일 한국의 ‘영포티’(Young Forty·젊은 척하는 40대) 현상에 대해 이같이 소개했다.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는 아이폰이 왜 유독 한국에서 40대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는 걸까. 그 배경엔 지난해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으며 공유된 몇 장의 이미지들이 있다. 스투시 티셔츠·나이키 에어조던 신발 등 스트리트 패션 차림에 아이폰 17을 손에 쥔, ‘나잇값 못 하는’ 40대 남성을 담은 이들 이미지는 2030 세대의 폭발적인 공감과 호응을 받으며 온라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영포티 논란은 옷차림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 정도면 아직 괜찮지’ 생각하며 20대 여성들에게 구애하거나 20대 남성들에게 경쟁의식을 느끼는 40대 남성들은 ‘스위트 영포티’로 조롱당한다. 보수화된 2030을 ‘극우’라고 비난하다가 ‘민주화를 말하지만 어느 세대보다도 권위적이고 독선적’이란 역공을 받기도 한다. 보수·진보, 영·호남, 남녀로 갈려 있는 한국사회에 새로운 양상의 세대갈등까지 더해진 셈이다.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사사건건 대립하는 영포티와 ‘MZ’는 과연 화해할 수 있을까.
◇조롱 표현으로 전락한 영포티= 영포티란 단어가 처음부터 부정적 의미였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5년 김용섭 ‘날카로운 상상력 연구소’ 소장이 ‘라이프 트렌드 2016’이란 책에서 영포티라는 단어를 처음 제안했을 때는 젊게 살려 하는 40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1990년대를 주름잡던 X세대가 40대로 접어들며 소비 트렌드를 주도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인구에 회자되는 영포티란 단어엔 나이에 걸맞지 않게 행동한다는 조롱이 더해졌다.
온라인엔 영포티의 ‘만행’을 고발하는 글이 넘쳐난다. 단순한 취향 문제를 넘어서, 한참 어린 여성들에게 접근하는 중장년 남성들의 추태를 꼬집는 내용이 많다. “버스 정류장에서 나이 많은 아저씨가 번호를 물어봐 당황했는데, ‘번호 안 주면 못 보낸다’고 크게 말해서 얼떨결에 번호를 주니 자꾸 문자가 와요.” “마트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일 때문으로 잘못 알고 어떤 아저씨에게 번호를 알려줬더니 자꾸 만나자는 연락이 와요. 저는 95년생이고 저분은 76년생이시네요.”
한 네티즌은 “상사가 영포티가 도대체 어떤 거냐길래 ‘20대 여성과는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데 20대 남성에겐 철저한 위계질서·상명하복을 바라는 것’이라고 했더니 퇴근할 때 인사 안 받아주더라”고 말해 많은 공감을 받았다. 정치 성향까지 세대별로 갈리면서 영포티와 20대의 갈등은 더 치열해졌다. 40대 이상은 진보 성향이 강한 반면 20대는 오히려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한 진보 성향 유명 정치평론가는 유튜브 방송에서 “40대를 영포티로 조롱하는 애들은 다 국민의힘 지지하는 애들, 이명박이 만든 작품”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내가 너희들보다 ××도 100배는 더 많이 했다”고까지 해 빈축을 샀다.
◇“젊은 척하는 모습 정떨어져”= 카페·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대학생 이소은(24) 씨는 “영포티라는 말부터 짜증 난다”고 꼬집었다. “마흔 살이 넘은 사람들이 스스로 아직 젊다고 세련됐다고 생각하면서 알 수 없는 자신감을 내보이는 것이 싫다”는 설명이다. 이 씨는 주로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이런 ‘영포티’를 접한다고 한다. “영포티들은 ‘나는 이 정도는 요구해도 된다’ ‘돈 충분히 쓸 수 있다’는 태도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더라고요.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하면서 ‘우리도 아직 젊다’는 태도를 보일 때마다 정떨어져요.”
영포티들은 유행을 선도한다고 자처하지만, 이 씨는 그들이 나이 들어서도 젊은 취향을 계속 독점하려는 게 오히려 꼴불견이라고 혀를 찼다. “그 사람들이 젊을 때 좋아했던 연예인이나 대중문화 작품을 계속해서 좋아하는 건 상관없어요. ‘슬램덩크’가 새로 나와서 옛날 생각나 보러 간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새로 나오는 아이돌이나 지브리 스튜디오 AI이미지 유행 같은 것까지 다 그 사람들이 누리려는 건 솔직히 욕심 아닌가요.”
하지만 영포티를 바라보는 MZ세대의 눈이 마냥 냉소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취업 준비생 최윤호(29) 씨는 “처음엔 그냥 중년들이 유행 따라 하는 게 보기 싫다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계속 지켜보니 그들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그들도 자기 취향을 가질 자유가 있다”며 “진짜 문제는 일자리·주거 같은 구조적인 불안인데, 분노가 취향 쪽으로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진단했다. “느리고 냄새난다며 노인을 싫어하던 사회가 중년의 주책맞은 ‘아줌마’와 ‘개저씨’를 미워하다가, 이제는 영포티까지 미워하는 방향으로 내려온 느낌입니다.”
◇‘나이 들어도 취향 있어’ 40대의 반론= 영포티로 지목되는 40대들도 할 말은 있다. 회사원 김지현(42) 씨의 말이다. “처음엔 영포티라는 말이 긍정적인 줄 알았어요. 요즘 40대는 예전처럼 중년으로 묶이지 않고 젊은 감각을 유지한다는 의미인 줄 알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말이 조롱처럼 쓰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김 씨는 “나는 그저 예전에 좋아하던 걸 계속 좋아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40대는 나이가 들면 선호하는 옷이나 가방, 문화적 취향을 포기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김 씨의 항변이다. 그는 “취향은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깊어진다고 생각하고, 문화에 네 것 내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김 씨 역시 “어려 보이려고 너무 애쓰는 모습까지 한 덩어리로 묶일 때는 거부감이 든다”며 “유행에 열일 제쳐두고 열심인 모습을 보면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고, ‘남이 보면 나도 저러나’ 하는 생각에 창피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30대인 한도연(33) 씨도 “영포티 얘기를 들으면 남 얘기 같지 않다”며 “몇 년만 지나면 그게 바로 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했다. “부모님 세대는 30대 초반에 결혼하고 애 낳고 집을 샀죠. 그런데 저는 여전히 아이돌이나 애니메이션·영화·드라마 같은 취향 소비 안에 있어요. 20대 초반과 비교해 제가 뭐가 달라졌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이제야 돈을 벌고 좋아하는 영역에 마음껏 돈을 쓸 수 있게 됐는데, 지금의 20대가 자신을 바라본다면 영포티와 다를 바 없지 않겠느냐고 한 씨는 되물었다.
조재연 기자, 장상민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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