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마이크 버드 지음│박세연 옮김│알에이치코리아
서울 30대 주택소유비중 25%
세대 간 자산격차·출산율 바닥
주담대 등 토지 금융화 원인지목
日버블붕괴 등 국가위기도 초래
“토지 임대수익 100% 과세 등
과감한 토지 공공성 강화 필요”
영국 경제 전문기자 저자 조언
오늘날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부동산이다. 2025년 한국의 토지가치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89%, 2000년 92%에서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서울의 중위소득 가구가 적당한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14년이나 걸린다. 런던이 8년, 샌프란시스코는 10년이니, 서울 집값은 서구의 어떤 도시보다 비싼 편이다.
서울 거주 30대 중 주택 소유자 비중은 25.8%, 역대 최저 수준이다. 10년 전엔 33.3%였다. 갈수록 심해지는 세대 간 자산 격차, 어른들 도움 없이 집 한 칸 마련할 수 없는 비자립적 처지는 청년들을 좌절과 불안, 분노와 증오로 몰아넣는다. 세계 최하의 출산율은 그 결과다. ‘부동산 불패’는 불평등을 심화하고 세대 간 격차를 고착해서 국가 위기를 촉발하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저주다.
‘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에서 영국 경제 전문기자 마이크 버드는 이것이 한국만의 일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부동산 담보 대출, 즉 토지의 금융화 현상에 포획된 금융 자본주의 국가 전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이 책은 현대 금융 시스템이 자본 투자나 기술 개발이 아니라 토지에 예속되는 과정과 그 심각한 위험을 역사적으로 분석해 보여준다.
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산이다. 새로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으며,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잘 떨어지지 않는 최고의 안전자산이다. 약 3500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부터 토지를 소유하고 통제하는 기술은 권력을 부로 전환하는 최초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근대 이전에는 토지를 이용해 신용을 창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대개 왕과 가문의 소유였고, 경제보다 정치적 이유에 따라 처분됐다. 땅은 권력의 핵심 원천으로 세금, 군사력, 충성 등을 얻는 토대였다. 땅을 잃으면 모든 걸 잃기에, 땅을 담보 잡는 일은 드물었다.
부동산 담보 대출의 제도화는 근대에 시작됐다. 미국 독립혁명이 계기였다. 조지 워싱턴, 알렉산더 해밀턴, 로버트 모리스 등 혁명 지도자들은 대규모 토지 투기꾼이었다. 이들은 광활한 영토를 자유롭게 개발해 매매할 권리를 바랐고, 확보한 토지를 담보로 돈을 빌려 투자하는 식으로 자산을 부풀리기를 원했다. 현재의 토지 금융화와 자산 격차는 이런 미국식 ‘부동산 자본주의’가 1970년대 중반 이후 세계화하면서 퍼져나갔다.
토지와 금융의 결합과 국가적 확산은 위험한 결과를 낳았다. 땅값 등락이 실물경제를 뒤흔들고, 금융을 인질 삼아 국가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는 현상이 흔해졌다. 저자는 이를 ‘토지의 덫’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에 시작된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와 장기 정체,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세계 금융위기, 2020년대 초 중국의 부동산 위기 등은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 역시 이 덫에 걸려 위태위태하다.
토지의 덫은 토지가 국가 전체의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금융과 토지의 연결고리가 강한 곳에서 나타난다. 이런 곳에선 땅값이 오르면 신용이 부풀면서 토지 소유자에게 더 크게 자원이 모인다. 땅값 상승이 신용 팽창으로, 신용 팽창이 자산 가격 상승을 유발하면서 땅 없는 이들의 삶은 점점 나빠진다. 갈수록 불평등이 심화하고, 세대 갈등이 심해진다.
국가가 개입해 땅값을 잡으면 다른 문제가 생겨난다. 거품이 터지면서 금융시스템 자체가 붕괴하는 것이다. 서민들은 길거리에 나앉고, 국가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는 재앙이 일어난다. 따라서 정부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다. 주택 가격을 안정시켜 서민의 주거 안정을 꾀하면서 자산 가치를 유지해 위기를 막아야 하는 모순된 요구를 이룩해야 하는 것이다. 갈팡질팡 정책은 이로부터 나타난다. 더욱이 오늘날 디지털 경제의 승자인 슈퍼스타 도시, 즉 런던, 뉴욕, 샌프란시스코, 서울 등은 ‘토지의 덫’으로 인한 주택 부족에서 기인하는 출산율 저하, 불평등 심화 등이 한층 심각하다.
저자에 따르면, 토지 문제는 주택 공급을 늘리거나 이자율을 조절하는 식으론 해결할 수 없다. 토지를 금융화하지 못하게, 모든 토지 임대 수익에 100% 과세하는 헨리 조지식의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싱가포르의 정책은 그 한 예다. 싱가포르는 토지 전체를 국유화해 국민에겐 99년짜리 임대권만 판매한다. 그 덕에 땅값 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공공으로 환수하고, 필요할 땐 정부가 주택 공급을 쉽게 조절할 수 있다. 토지 공공성을 강화해 금융 자본을 토지 말고 다른 쪽으로 유도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제고한 것이다. 368쪽, 2만5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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