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컨버전스, 초융합 시대가 온다
제이미 메츨 지음│최영은 옮김│비즈니스북스
인공지능(AI) 이야기가 넘쳐난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지겹다. ‘AI가 이것까지 가능하다’는 소식에 매번 놀라기엔 이미 피로가 쌓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 꽤 솔깃하다. AI가 세포만으로 고기를 만들고, 암을 발병하기 5년 전에 찾아내며, 쌀 수확량을 3배까지 늘려 식량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 생명공학·유전공학 분야의 대중화를 이끈 미래학자 제이미 메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기술혁명이 생명·유전학과 결합하며 만들어내는 거대한 변곡점이 우리 눈앞에 있다. 저자는 이를 책의 원제이기도 한 ‘초융합’(superconvergence)이라고 부른다.
AI의 강점은 압도적인 분석력이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능력은 AI의 미덕이다. 이 능력이 생명공학과 만날 때 파급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인간은 약 37조 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다. ‘정보의 홍수’인 인터넷 속 데이터를 분석해 척척 답변을 내놓는 AI에는 그리 대단한 숫자가 아니다. 실제로 세포와 단백질 분석에 AI 알고리즘을 적용했을 때 효율은 기존 방식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에 열광하던 사이, 생명과학의 판을 바꾸는 경쟁은 이미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폴드’가 대표적이다. 2018년 개발된 이 단백질 구조 예측 프로그램은 몇 년 사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인체의 거의 모든 단백질을 포함해 35만 개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190개국, 200만 명 이상의 사용자가 2억 개 이상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데 ‘알파폴드’를 사용했다. 과거 수년이 걸렸던 세포분석은 이제 수십 분이면 가능해졌다. 이 성과는 현재 말라리아 백신, 암 치료법, 플라스틱 분해 효소 개발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단백질 하나를 분석하는 데 3년이 걸리던 시대에서 30분으로 단축된 시대의 풍경은 전혀 다르다. 2억 개의 단백질을 단기간에 예측할 수 있게 되자 mRNA 백신이 등장했고, 수정란 단계에서 치명적 질환을 고칠 수 있는 기술도 현실이 되고 있다. 머지않아 개인의 유전자 정보에 맞게 제작된 ‘맞춤형 치료제’가 일상화될 가능성도 크다. 팬데믹 시기, 우리는 이 변화의 효과를 체감했다. 2021년 말 오미크론 변이가 등장한 뒤, 이에 특화된 부스터 백신은 불과 몇 달 만에 실용화됐다. 뒤이어 영국의 연구팀은 고도화된 AI 알고리즘으로 이외의 변이 바이러스의 염기서열 데이터를 분석했고, AI 설계 백신 후보를 구비해뒀다. 이 덕분에 코로나바이러스는 더 이상 인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게놈 분석의 속도 역시 혁명적으로 변했다. 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 당시, 전체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데는 비용만 27억 달러가 들었지만 정확도는 낮았다. 2015년에는 비용이 40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고, 오늘날에는 100달러 내외까지 내려왔다. 최근 몇 년 사이 성행하고 있는 유전자 검사도 그 결과물이다. 현재 개발 중인 하이브리드 컴퓨터 칩이 완성되면 체내 분자를 전자회로와 연결해 실시간 생체활동을 추적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과 중국 등은 이미 수백만 명의 전체 게놈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저자는 10년 안에 10억 명 규모의 게놈 데이터가 축적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AI 기반 진단 기술의 성과도 눈부시다. 당뇨망막병증과 녹내장 진단 정확도는 93%를 넘고, 폐암과 유방암 진단 역시 86% 이상의 정확도를 보인다. 이제 알고리즘은 ‘진단’을 넘어, 몇 년 앞서 질병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런던에서 개발된 한 AI 알고리즘은 의무기록과 영상의학 자료만으로 대다수 일반의보다 최대 5년 앞서 대장암 징후를 감지할 수 있다.
식량 문제에서도 AI는 새로운 해법으로 떠오른다. 2050년 지구 인구는 100억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지만, 농지를 50% 더 늘리면 지구의 숲은 사라진다. 이 위기 앞에서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하면 쌀 수확량을 세 배까지 끌어올릴 수 있고, 가뭄과 병충해에 스스로 대응하는 스마트 작물도 만들 수 있다. 합성미생물은 화학비료 없이 토양을 회복시키고, 축산업은 배양육과 대체육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배양육은 AI 기술을 바탕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분야다. 미국·중국·네덜란드 등 주요 국가는 세포 농업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며 한국 역시 2024년 경북 의성 일대를 배양육 산업을 위한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그러나 혁신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 인간 배아와 가축 세포까지 편집 가능한 시대가 도래했지만, 규제와 윤리는 여전히 국가별로 파편화돼 있다. 책은 ‘초융합’ 시대를 맞아 공통된 국제 기준과 긴급대응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책의 첫머리에 인용된 미국의 로봇공학자 랜들 먼로의 말은 이렇다. “나는 이카루스 이야기를 인간의 한계라는 시점에서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저 왁스가 접착제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교훈을 얻었을 뿐이다.” 이 시대의 ‘이카루스’에 이제 날개를 튼튼히 붙일 접착제 정도는 쥐어진 듯하다. 다음 질문은, 이카루스가 어디로 향할 것인가다. 616쪽, 2만4000원.
신재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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