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

엘리자베스 코멘 지음│김희정·이지은 옮김│생각의힘

 

외관상 멀쩡한 여성의 성형수술

남성욕망에 기반한 사회적 압박

 

심장질환·폐암진단서 소외되고

코로나백신 부작용도 ‘음모’ 몰아

 

왜곡된 의학적 지식 여전하지만

여성의 수많은 희생으로 개선중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자궁은 모든 질병의 근원”이라 주장한 바 있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지만, 여성에 대한 시각이 심히 왜곡돼 있음을 엿볼 수 있다. 15세기 말 가톨릭 성직자들이 쓴 ‘마녀의 망치’라는 문서에도 “여성이 혼자 생각할 때는 사악한 생각을 한다”고 적혀 있다. 종교적 신비주의와 비과학적 사고의 엉뚱한 결론이다. 이 문서는 결국 중세 마녀사냥의 근거가 됐으며 여성의 의료 행위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종양내과 전문의이자 의학 연구자인 저자는 이처럼 의학이 오랜 기간 얼마나 많은 여성의 몸을 오진했는지 보여준다. 더불어 남성에 비해 불필요하게 많은 오해를 받았던 여성의 몸과 통증에 관한 진실을 추적한다. 책은 출간과 동시에 2024년 아마존 최고의 책에 선정됐으며,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책에서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은 성형수술과 여성에게 가해지는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다. 모순적이게도 성형수술은 전쟁 이후 망가진 얼굴로 인해 사회생활에 복귀할 수 없었던 남성들을 위해 처음 고안됐다. 얼굴에 남은 끔찍한 흉터나 드러난 턱뼈를 재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런데 몇몇 의사들이 이러한 수술을 외관상 멀쩡한 여성에게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인류 최초로 유방 보형물 수술을 받았던 티미 진 린지는 의사들의 강요와 회유에 넘어가 수술을 받았다. 음순 성형술을 받는 여성들 가운데서는 비대칭인 소음순의 모습이 흔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수술받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저자는 피부에 행해지는 여러 수술은 사실 남성의 욕망에 기반함을 지적한다. 메스를 손에 쥔 이들은 절대다수가 남성이며, 그 대상자가 여성이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서구의학은 여성의 신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심리적’인 문제로 결론지었다. 그 결과 수많은 여성이 심장질환처럼 명백한 증상도 제대로 진단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심장질환은 오래도록 남성들만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여성 심장질환과 관련된 역사상 첫 학회는 남편의 심장 건강 유지를 돕는 방법을 다뤘다. 이후 미국 의학원이 여성의 심혈관계질환과 관련된 보고서를 발간한 2001년이 되어서야 여성의 심혈관계질환 사망률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2017년 폐색전증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던 테니스 선수 세리나 윌리엄스의 사례는 의학계의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편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의료진은 기침이 심해 폐 CT를 찍어달라는 그녀의 간청을 “헛소리”로 치부했다. 그러나 촬영 결과 그녀의 폐에서는 정말로 혈전이 발견됐다.

문제는 고대 그리스 이후 의학이 항상 남성을 기본값으로 여겼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자전거 타기와 장거리 달리기와 같이 지금은 누구나 즐기는 운동이 한때는 여성의 근육과 자궁 건강에 부적합하다고 여겨졌던 때도 있다. 이는 격한 운동은 남성의 전유물이어야 한다는 편견에서 나왔다. 암 진단에 있어서도 여성은 소외됐다. 중년의 남성 흡연자가 ‘표준’ 환자로 여겨지는 폐암의 경우 여성은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한다. 1980년대 이후 여성의 폐암 발병률은 오히려 증가했으며, 폐암으로 사망하는 여성의 수가 유방암·자궁암·난소암으로 사망하는 여성보다 많다.

여성에 대한 의학의 실수는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사그라지고 일상으로 복귀할 때 즈음 코로나19 백신이 여성 접종자에게 높은 확률로 돌발 출혈, 월경 과다 등을 초래함이 밝혀졌다. 유례없는 전 세계적 전염병에 너도나도 백신을 접종받은 이후였다. 그럼에도 이전까지 여성들이 주장한 백신 부작용은 “음모론”으로 치부됐다.

이처럼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의학적 지식을 재생산한 남성 의학자들은 여전히 의학 교과서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달라지고 있다. 여성의 의대 입학률은 남성을 뛰어넘은 지 오래며,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논문도 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비로소 바로잡게 된 그릇된 지식 뒤에는 여성들의 희생이 있었다.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모든 여성의 삶에 대한 헌정이다. 그들이 살았던 삶, 잃어버린 삶, 그리고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에 대하여.” 576쪽, 2만6000원.

김유진 기자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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