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놈, 대가리는 조막만 한데 주둥아리는 길쭉하니 참 귀엽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의 작은 소란은 이 말로부터 시작된다. 늘 이웃과의 대화가 고픈 할머니가 주인의 품에 안긴 특이한 개를 보고 하는 소리다. “우리 강아지, 아니 우리 애한테 대가리라뇨, 주둥아린 또 뭐예요?” 말쑥하게 차려입은 40대 견주의 날 선 말에 엘리베이터 안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얜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란 말이에요”라고 쏘아붙이며 나가는 말도 아프다.
국어 선생으로서 심판을 보자면 할머니의 압승이다. 개도 동물이니 ‘머리’와 ‘입’ 대신 ‘대가리’와 ‘주둥이’ 혹은 ‘주둥아리’를 쓰는 것이 옳다. 이에 반해 견주는 다섯 살은 넘어 보이는 개를 ‘강아지’라 하는 것도 모자라 ‘우리 애’라고 한다. 본래 강아지는 ‘개의 새끼’라는 말인데 다섯 살이 넘은 개는 사람으로 치면 30대 중반이니 강아지가 아니다. 게다가 ‘우리 애’라니, 이건 스스로가 ‘개자식’이 아닌 ‘개어미’나 ‘개아비’를 자초하고 나선 격이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본래 뭔가 잘 모르는 사람이 막말할 때는 ‘대가리가 나빠서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린다’라고 말해도 되지만 그것도 꺼려지는 상황이 되었다. 사람에게는 쓰면 안 되지만 동식물에게는 오히려 더 어울린다고 믿었던 ‘대가리’나 ‘주둥아리’도 그렇다. 자신의 애라 여기는 개의 머리와 입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하는 이도 많아졌다.
동물복지를 넘어 식물복지까지 언급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북어 대가리’나 ‘오리 주둥이’도 문제 삼을 만하다. ‘북어 머리’나 ‘오리 입’은 아무래도 입에 안 붙는데 말이다. 게다가 ‘콩나물 대가리’도 안 되니 ‘콩나물 머리’라고 해야 하나? 음악을 잘 모르는 이에게 다섯 개의 가로선 위에 어지럽게 늘어선 까만 그림은 ‘콩나물 대가리’로 보이는데 말이다. 어쩌랴, 말은 들으라고 하는 것. 그것이 고깝다면 달리 말할 수밖에.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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