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외교부의 2026년도 업무보고를 지켜보며 문득 2024년 9월의 기억이 떠올랐다. 늦은 여름휴가 차 방문했던 모리셔스에서의 일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날아온 ‘해외안전여행 길잡이’ 문자에는 “모리셔스에는 우리 대사관이 없으며, 주마다가스카르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는 안내가 포함돼 있었다.
낯선 땅에서의 긴장 탓이었을까. 조심한다고 했음에도 결국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났다. 보험으로 해결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인명 사고라도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다. 도움받을 곳 하나 없는 타국에서 ‘대사관’이라는 울타리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느낀 계기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업무보고에서 외교부에 “우리나라는 재외공관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며 “제대로 관리되나 의심스럽다”고 질책했다. 이어 “인구가 200만∼300만 명인 곳까지 다 재외공관을 만들던데 이게 실효성이 있나 모르겠다. 거점공관 하나로 모는 게 맞지 않나”라고 했다. 이에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일 시무식에서 “효율성이 낮은 공관에 대해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공관의 주요 기능을 거점공관 중심으로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말 우리 재외공관 수는 국력이나 인구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걸까. 우리나라의 재외공관 수는 대사관 122곳, 총영사관 46곳, 대표부 5곳 등 총 173개다. 이웃 나라 일본은 2024년 기준 총 231개다. 호주의 외교정책 싱크탱크 로위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인구가 비슷한 스페인은 2024년 기준 190곳, 이탈리아는 206곳이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 재외공관 수가 지나치게 많다고 단언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런 기조 속에 외교부는 윤석열 정부에서 결정된 12개 신규 공관 개설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이미 개소 절차를 마친 5곳을 제외한 시에라리온, 마셜제도 등 6개국의 신설 계획과 자메이카 분관의 대사관 승격 방침이 ‘올스톱’ 된 것.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부산 영사관 폐쇄 검토 소식에 ‘동맹의 균열’을 우려했던 목소리가 나왔던 것처럼, 신설 계획의 전면 중단은 해당 국가들에 부정적인 외교 시그널을 줄 수 있다.
물론 방만하게 운영되는 공관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대신 공관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단기 체류객, 교민, 기업인들에게 공관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고 울타리다. 결과를 신중하게 따져 재외공관 역할 재창조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권승현 기자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