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용 전국부장

정부가 앞으로 통합하는 광역지방자치단체에 4년간 최대 20조 원의 현금 인센티브를 지원하겠다고 밝히자 전국이 술렁이고 있다. 야권 입장에선 6·3 지방선거 압승을 통해 지방권력 교체까지 완성하려는 이재명 대통령의 ‘판 흔들기’ 카드라는 점을 알면서도,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형국이다. 광주·전남은 물론, 대전·충남, 부산·경남, 대구·경북 등 4개 통합특별시가 만들어질 경우 정부와 국민이 총 80조 원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 의문이 제기되지만, 눈앞에 제시된 거액의 유혹은 이를 덮어버린다. 자칫 ‘20조 원을 날렸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부담도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한시적 현금 지원안은 지자체들이 요구해온 국세·지방세 비율 조정을 통한 항구적 재정 기반 확충, 예비타당성 조사 한시 면제, 국가산단 지정 등과 거리가 멀다. 이 때문에 지난 21일 김태흠 충남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이 긴급 회동에서 “대통령 공약 선전용 쇼케이스”라고 직격한 것이다.

2010년 마산·창원·진해(마창진) 통합 과정을 돌아보자. 2009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합을 언급한 뒤, 정부가 현금 인센티브를 제시하자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인구 100만 명의 운명을 좌우하는 통합은 그해 12월 세 도시 시의회 의결로 사실상 확정됐다. 마창진 통합과 현재의 통합 논의는 완벽한 판박이다. 첫째, 반년도 안 되는 카운트다운이 주어졌다. 2월 특별법의 국회 통과, 6월 통합 지자체장 선출, 7월 출범이라는 속도전은 그때보다 더 빠르다. 둘째, 지자체들은 중장기적으로 먹고살 방법을 요구했는데 정부는 특별교부세 같은 현금 인센티브만 제시했다. 셋째, 대통령이 화두를 던지고 정치권이 바람몰이하는 하향식 반강제 통합이다. 권위 있는 주민 대상 여론조사, 주민투표는 철저히 배제됐다. 이렇게 합쳐진 마산·창원·진해의 시민들은 통합에 만족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거의 모든 학술조사와 여론조사에선 3개 시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다시 분리하자는 주장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마창진 통합의 가장 큰 문제로 ‘공론화 시간의 부족’을 꼽는다. 지역 소멸 위기와 수도권 일극 체제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규모의 경제를 키워야 한다는 행정통합 논리 자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문화일보 역시 지난해 3월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주제로 한 포럼을 열며 통합의 필요성에 공감한 바 있다. 문제는 방식과 시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수년간 진행돼온 통합 논의를 외면하다가 선거를 앞두고 통합을 압박하는 모습은, 통합의 당사자인 시민들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대로 주민투표 없이 여당 주도로 통합이 강행된다면, 마창진 통합 이후 겪었던 불만과 갈등, 재분리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 행정통합은 단순한 제도 개편이 아니다. 시민의 삶의 구조와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대 사안이다. 그런 결정을 주민의 동의 없이, 선거 일정에 쫓겨 밀어붙인다면 그 통합은 출범과 동시에 정당성을 잃는다. 충분한 공론화와 주민투표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한 통합만이 지속 가능하다. 그것이 마창진 통합이 남긴 교훈이다.

김만용 전국부장
김만용 전국부장
김만용 기자
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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