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신년회(新年會)란 새해를 맞이하여 1년을 축하하는 모임을 말하는 것인데, 1926년 1월에 조선 최초로 이색적인 신년회가 열렸다. 바로 동부인(同夫人) 신년회다. 동부인 신년회에 관한 첫 기사는 1월 20일 동아일보에 실렸다.

“사회 교풍(矯風), 가정 개량 등을 위한 첫 시험으로 신년을 당하여 동부인(同夫人) 신년회를 오는 23일 오후 4시 반에 경성 돈의동에 있는 명월관(明月館) 본점에서 열기로 하였는데, 그날 밤에는 명사 귀부인들의 강연과 풍속, 습관, 제도 등 개량에 대한 의견 교환 등이 있으리라 한다. 그에 참가할 동부인은 신구(新舊) 가정을 불문하고 동부인이면 참가를 환영한다 하며, 회비는 한 사람에 대하여 2원씩이라는 바, 참가는 오는 23일 정오까지 시내 익선동 11번지 동부인 신년회 준비위원회로 혹은 전화 광화문 556번으로 통지하는 것이 좋겠다더라.”

이에 대해 같은 날 매일신보에는 이런 내용이 실렸다. “경성 시내 유지의 발기로 동부인 신년회를 연다고. 첩(妾)을 데리고는 참가할 자격이 없으니까 그렇다 하면 연회 당일에 경성부의 호적부를 빌어와야 할 모양이지요.”

며칠 뒤인 25일 동아일보에 명월관에서 열린 동부인 신년회에 대한 사진과 자세한 기사가 실린다. “예정과 같이 23일 오후 4시 반부터 명월관에서 열렸는데 참가하신 분이 26명이다. 그 회의 취지는 ‘조선은 지금까지 재래에 있던 모든 풍속과 습관이 파괴되어 가는 상태에 있다. 파괴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건설이 있어야 된다. 여러 가정과 가정이 때때로 모여 정의를 존수(尊守)하는 가운데 건설자가 되자’ 하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분 가운데 가장 이채를 발하는 것은 이성용 박사의 부인인 독일 여자 이마리아 여사였다. 술을 폐(廢)한 담박(淡泊)하고 질소(質素·소박)한 저녁상이 나오자 여러 사람은 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면서 가정 개량에 대한 한 가지씩의 의견을 말하였는데, 우리 가정 부인에게 참고될 만한 말씀이 많으므로 아래에 기록해 보려 한다.”

신문에서는 이날 참석한 26명이 각자 낸 가정 개량에 대한 의견 중 몇 개를 소개했다.

“조선에 나와서 처음으로 느낀 것은 조선 부인은 운동을 아니 하므로 약하다. 여러분은 무슨 운동이나 일정한 운동을 하여 건전한 조선의 어머니가 되시기를 바란다.” (이마리아 여사) “조선 민족은 언어가 없어지지 아니하는 이상 결단코 멸망하지 아니한다. 요사이 일본말을 섞어 하는 것은 좋지 못한 징조다.” (박승빈 씨) “부부가 가정에서 같이 오락을 취할 시간을 만듭시다.” (박후병 여사) “길에 다닐 때에 사내는 먼저 가고 여편네는 나중 가는 것은 대단히 보기 흉합니다.” (박인덕 여사) “남자는 절대로 여자에게 복종할 것.” (김신일 여사) “남편이 연회에 가서 기생을 불러 놓은 이튿날은 그 벌(罰)로 일찍 일으키시오.” (권애라 여사)

19세기발전소 대표

※ 위 글은 당시 지면 내용을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옮기되, 일부 한자어와 문장의 옛 투를 살려서 100년 전 한국 교양인들과의 소통을 꾀했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