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임재범 ‘인사’

‘어쩜 우린 복잡한 인연에 서로 엉켜 있는 사람인가 봐’(임재범 ‘너를 위해’) 학교와 방송사를 오가며 직장생활 40년을 하다 보니 연예인 제자도 몇 명 된다. 국어 교사 시절엔 배우 최민수가 교실에 있었고 (교무실에서도 여러 번 봤다) PD 시절엔 개그맨 정성호가 한 학기 수업(서울예대 방송분석)을 들었다. 좋은 소식이 들리면 덩달아 기쁜데 혹여 궂은 소식이라도 들리면 주변에서 한마디씩 거든다. “어떻게 가르쳤길래.”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그래도 솔직히 신경이 좀 쓰인다. 제자가 잘되길 바라는 건 교사의 기도 제목. 내 삶에 찾아온 소중한 선물이기에 오늘도 감사하다.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 두 사람 얘기를 꺼낸 건 오늘의 주인공이 임재범이라서다. 최민수와는 동갑내기(1962년생)에 ‘사랑보다 깊은 상처’도 살짝 겹친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임재범 ‘너를 위해’)으로 호불호도 갈린다. 둘 사이에 관해 물은 적이 있다. 한때 친했고 요즘(지금이 아니라 내가 질문할 그 당시) 소원해졌다는 대답을 들었는데 그 이유가 참 ‘한국적’이었다. 오랫동안 ‘형 동생’ 사이였다가 임재범의 실제 나이가 밝혀진 후 관계가 어색해졌다는 거다. 이런 일이 방송가에선 가끔 벌어진다. 나이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나를 속여 가면서 믿고 싶어 했을 뿐’(김완선 ‘나만의 것’) 그래서 이른바 ‘민증 까’(주민증 제시하기) 사태도 발생하는데 사실 임재범은 나이를 속이거나 바꾼(?) 적이 전혀 없다. 본인이 출생 신고를 한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조금 유난한 삶을 살아서 벌어진 불가항력적 결과물로 나는 이해했다.

정성호는 임재범 성대모사로 유명하다. 소문에 따르면 처음엔 담당 PD까지도 겁을 냈다. 때마침 가수는 외국에 체류 중이었고 그 틈에 방송을 내보냈는데 후환이 두려웠다고 한다. 혹시라도 신비주의를 망가트린 데 대해 항의하거나 직접 방문이라도 하면 어쩌지 내심 두려웠으리라. 그러나 기우였다. 전화가 오긴 왔는데 우려와 정반대였다. “재밌게 봤어요. 앞으로도 마음껏 하세요.” 혹시 말로만 그랬거나(반어법) 그때만 그런 게 아니었을까. 그 후 행동으로 보여 준 사례가 그의 진심을 증명한다. 자신의 콘서트에 정성호 부부를 깜짝 손님으로 무대에 부른 게 대표적이다. (숟가락 하나 얹자면 나는 그 부부의 결혼식 주례)

재미 삼아 연예인을 CSI(과학수사대)로 분류한 적이 있다. 캐릭터(C) 스타일(S) 이미지(I)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더러 있는데 임재범도 특별하다. 내 기준으로 ‘싱어게인’에서 부활의 이미지를 확실히 보여 준 가수는 다름 아닌 임재범이다. 유행어 그대로 그는 ‘참 잘했다.’ 그의 한숨, 그의 박수, 그의 눈빛이 그동안 몰랐거나 오해를 샀던 그의 속내를 여실하게 드러냈다.

어제 부활한 가수가 오늘 갑자기(?) 은퇴를 선언한 것도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상처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 거지 고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을 소중한 걸 깨닫게 했으니까’(임재범 ‘비상’) 관찰은 겉을 보는 것이고 통찰은 속을 보는 것인 데 반해 성찰은 나를 보는 것이다. 가사를 쓴 채정은 작사가는 그저 임재범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통찰, 성찰하는 단계로까지 비상하도록 도왔다.

임재범이 부른 노래는 결국 임재범이 되었다. 이번에 발표한 ‘인사’(채정은 작사)는 왠지 모든 예술가의 고해(告解)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대의 진짜 사랑에 (사랑에) 감사로 꽉 찬 이 노랜 (이 노랜) 온전히 나를 서게 한 그댈 향한 내 인사’ 임재범 가수 생활 40년(1986년 데뷔)에 당신은 왜 노래하는가에 대한 최후진술 같다. 멋있게 사는 것과 멋대로 사는 건 다르다. 멋있는 사람은 멋있게 사라진다. 그래서 임재범에게 이 말을 돌려준다. “참 잘했어요”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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