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K-컬처 국가전략 자산화 명암

성과가 최대 목표 된 문화정책

팔리는 장르와 작품에만 집중

 

문화 전체가 수출 예비 상품화

공공 부문마저 시장주의 방패

창작자 뛰놀 생태계 구축 절실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화를 성장 동력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K-컬처를 수출·관광·국가 브랜드를 견인하는 경제·외교 자산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K-콘텐츠가 글로벌 인기를 끌며 실적을 경신하고 있으니 이를 우리 경제의 동력으로 삼는 건 당연한 전략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문화정책을 떠올리면 그대로 박수만 치긴 어렵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콘텐츠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삼겠다며 문화예술을 ‘지원’이 아니라 ‘투자’로 보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영국 등 문화 선진국들도 1990년대 말부터 문화에 투자 개념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는 문화예술에 예산을 투입하는 이유를 설득하기 위한 기술적 언어일 때가 많았다. 또, 문화가 국가 전략이 될 때도 예술의 공공성을 앞세우는 품위는 지켰다. 전 세계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문화를 가진, 한국 정부가 ‘문화=투자’라는 노골적인 캐치프레이즈를 앞뒤 설명 없이 공식적으로 앞세웠다니 좀 부끄럽다.

문화도 당연히 산업이다. 기업과 창작자도 작품으로 돈을 벌고, 이것이 경제를 도약시키고 국가 브랜드를 높이고 문화 융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공공 혹은 민관 펀드를 만들어 창작 지원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화예술을 성과산업으로 규정해 국가 브랜드를 위한 도구로 삼아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투자란 수익을 전제로 한다. 정부의 구상대로라면 잘 팔리는 장르, 그중에서도 잘 팔릴 작품에 공적 자본을 투입해 확실히 성과를 내야 한다. 정부가 자랑하는 7300억 원 규모 K-컬처 정책 펀드 역시 마찬가지다. 출판이나 학술 같은 눈에 보이는 성과와 거리가 먼 장르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쥐꼬리만 한 지원마저도 K-북 수출에 초점이 가 있다. K-콘텐츠 300조, 문화 5대 강국 깃발 아래 문화 전 영역이 수출 예비 상품이 되고 있다.

K-컬처의 외연 확장을 위해 푸드·뷰티·패션을 더해 K-컬처 산업이라고 명명하고 시너지를 내겠다는 구상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시너지야 당연히 일으켜야 하지만, 문화 부처의 정책 초점이 제반 산업 성과에 가 있는 건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

여기서 K-콘텐츠의 대표 상징인 영화 ‘기생충’의 성공 비결을 복기해보자. 이 작품은 바른손 E&A가 제작하고, CJ ENM이 투자·배급을, 북미 배급은 네온이 맡았다. 정부의 대규모 펀드가 투입된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의 몫이라면 1990년대부터 지속해온 스크린쿼터, 영화진흥기금, 영화진흥위원회 지원 같은 토대 마련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이라는 사실도 상징적이다. 이 같은 생태계 위에 작가주의 감독과 민간 투자가 결합해 ‘기생충’이 탄생했다. 공공은 시장 논리만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작품과 장르를 지키는 ‘시장 실패의 방패’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 문화정책은 방패가 되기보다 직접 나서 시장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공적 지원을 몰아주는 일종의 ‘국가 프로젝트’를 만들려 한다.

정부가 맡아야 할 핵심 역할은 맨 앞에 서는 주도자가 아니라 뒤에서 받쳐주는 인프라와 안전망 설계자여야 한다. 이미 세계적으로 증명된 한국 문화와 예술가의 저력으로 볼 때 더더욱 그렇다. 안정된 창작 여건을 만들고 공정한 유통 규칙과 세제와 기금 구조를 촘촘히 설계하고 단단하게 유지해 그 위에 예술가와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마음껏 뛰게 해야 한다. 문화의 과도한 수출 중심 전략은 오히려 ‘국가 기획 상품’이라는 인식을 심어 반(反)한류 정서를 자극할 우려가 크다. 서구에서 여전히 K-콘텐츠를 낮춰 보는 시선 역시 ‘국가 주도 상품’이라는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주 넷플릭스는 2026년 라인업을 발표하면서, 지난 5년간 210편이 넘는 한국 작품이 글로벌 톱10에 올랐다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현실이 됐다”고 했다. 넷플릭스는 “한류는 이제 시작”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10년, 20년 뒤에도 기억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를 선보이겠다.” “탄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던, 그러나 꼭 세상을 봐야 하는 영화를 지원하겠다.” 우리 정부는 투자자 넷플릭스만큼의 철학도 없는 것인가.

최현미 논설위원
최현미 논설위원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