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 타이드, 사상의 썰물과 밀물 - (6) ‘反이민정서’ 전세계 확산

 

 

이민자 역사 위에 세워진 미국

경제 불안·정체성 위기감이 혐오 키워

 

프랑스도 극우 득세에 ‘관용의 가치’ 잃어가

자유민주주의 안에서 옳고 그름 따져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에서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총격에 의한 사망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브라이언 오하라 미니애폴리스 경찰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재향 군인을 돌보는 간호사인 백인 남성 제프리 프레티(37)가 연방 요원의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프레티의 아버지에 따르면 그는 연방정부의 이민 단속에 반대해 시위에 참가해 왔다. 특히 이번 사건은 17일 전 르네 니콜 굿(여·37)이 ICE 요원의 총에 맞아 숨진 현장에서 약 1.6㎞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벌어졌다.

◇ 붕괴하는 멜팅팟과 미국적 가치의 상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포퓰리스트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체제에서 이민자 혐오의 선봉 국가로 변질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1일 트럼프 정부가 메인주에서도 이민자 체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16일에는 조지아주 이민자 구금시설에서 교통법규 위반으로 체포됐던 멕시코 국적자 헤베르 산체스 도밍게스(34)가 수감 6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트럼프 정부는 1∼2기 동안 멕시코 국경에 대규모 장벽을 건설하고, 다수 이슬람 국가 국민의 입국을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금지하며, 복지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이민자에게 영주권 부여를 거부하는 등 온갖 반이민 정책을 펼쳤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은 다양한 인종의 ‘멜팅팟(Melting Pot·용광로)’으로 불려 온 미국 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이다.

미국은 17∼18세기 식민지 시기부터 이민자들이 들어와 정착한 곳이고, 20세기 초까지 유럽·남미·중국·아프리카 등에서 수백만 명이 들어왔던 나라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인 1958년 저서 ‘이민자의 나라’를 통해 미국이 이민의 역사 위에 세워진 나라임을 강조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원주민을 제외하고 ‘순수한 미국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민자들이 미국의 경제 성장과 군사력, 과학기술 발전에 실질적으로 공헌했다고 분석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미국이 문을 닫는 순간, 미국은 스스로의 이상을 배신한다”고 역설했다.

◇ 톨레랑스를 잃어 가는 프랑스= 프랑스는 과거 이민자의 천국이었고, 소위 ‘톨레랑스(관용)’는 프랑스의 상징적 가치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현재는 이민자에 적대적인 극우파 세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장마리 르펜은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NF) 소속으로 16.9%를 득표했는데, 딸인 마린 르펜은 2017년 대선에서 1차 21.3%, 결선 33.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22년 대선에서는 국민연합(RN) 후보로 나서 1차에 23.2%, 결선투표에선 무려 41.5%를 얻었다. 심지어 지난해 12월 26일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 톨루나·해리스 인터랙티브가 성인 10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조사 결과, 여야 정치지도자를 통틀어 1위가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42%)였다. 중도 성향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현재 프랑스 정부의 정책조차 이민자에 대한 혜택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프랑스는 올해부터 모든 유학생에게 지급하던 주거 보조금을 중단하고, 유럽연합(EU) 출신이 아닌 학생에게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기로 했다.

◇ 반이민주의 정치는 왜 확산하는가= 카스 무데 미국 조지아대 교수(국제관계학)가 쓴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에 따르면, 21세기 세계의 극우 세력은 2001년 9·11 테러와 2008년 금융위기, 유럽으로의 난민 유입이 폭증했던 2015년 ‘난민 위기’로 반사이익을 얻었다. 모든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이 영향을 받았고, 우익 포퓰리즘 정당과 정치인들이 주류로 수용될 수 있었다. 게다가 극우 정당들은 이제 대중 정당으로 변신하고 마린 르펜 같은 여성 지도자도 등장하면서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무데 교수는 유권자가 극우 정당에 투표하는 현상에 대해 경제적 불안(박탈감)과 문화적 반발감(정체성에 대한 위협)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로저 이트웰 영국 배스대 명예교수(비교정치학)와 정치평론가 매슈 굿윈(전 켄트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은 저서 ‘국가 포퓰리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반란’에서 ‘4D 모델’을 제시했다. 4D는 파괴(Destruction), 박탈감(Deprivation), 불신(Distrust)과 탈노선(Dealignment)이다. 대규모 이민과 세계화가 국가 정체성과 문화를 파괴한다는 논리가 포퓰리즘 정서를 강화하고, 경제적·사회적 변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도 포퓰리즘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는 요인이 된다. 이는 기존 주류 정치 엘리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전통적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약해지면서 급진적 정치 세력에 기회가 된다는 분석이다.

◇ 이민자에 대한 혐오, 불관용으로 맞서야 하는가= 칼 포퍼는 유명한 정치철학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관용의 역설’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포퍼는 “우리는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불관용적인 사상을 억누를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며 “불관용을 설파하는 어떤 운동이든 법의 테두리 밖에 있으며, 불관용과 박해를 선동하는 일은 살인, 유괴, 노예거래의 부활처럼 범죄로 여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갖는 위험성도 있다. 영국의 언론인 겸 정치평론가 더글러스 머리는 ‘유럽의 죽음’에서 유럽은 정체성 위기를 초래한 이민에 ‘중독’됐다고 진단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대규모 무슬림 이주가 이뤄진 시기에 유대인을 겨냥한 공격이 곳곳에서 증가했다. 반면 무슬림에 대한 심각한 공격은 대부분 (기독교 반이민주의자가 아니라) 다른 무슬림이 저지른 것이었다. 따라서 머리는 이민자에 대한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며, 그것을 인종주의나 민족주의와 연결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반이민주의가 바람직한 사상이 아니란 이유로 탄압해도 된다는 것은 자유주의 이념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머리는 “과거 많은 사회당과 극좌 정당이 주류에 진입하는 것을 용인받고 그 과정에서 견해를 누그러뜨린 것처럼 민족주의 정당들도 과거 범죄 때문에 영원히 비난받는 게 아니라 정치적 토론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게 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이민주의에 비판적인 무데 교수도 “지나친 인권 침해와 과도한 무력 사용은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약화해 지금보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며 “폭력적인 극우 단체와 개인에 대응할 때도 자유민주주의의 한계 내에서만 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韓 이주배경인구 5%인데… 맹목적 외국인 혐오 여전

■ 한국은 이민후진국

이재명 대통령이 용산을 떠나 청와대에서 집무를 시작했던 지난해 12월 29일. 이 대통령의 출근에 맞춰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각종 시위 중에는 베트남 이주노동자 뚜안 씨를 추모하는 집회도 있었다. 대구 성서공단 내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그는 지난해 10월 정부의 미등록 이주민 합동단속을 피하려다 추락해 숨졌다. 뚜안 씨의 아버지가 108배를 했고, 대책위원회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에 3개월 이상 거주한 이주배경인구는 271만5000명으로, 총인구의 5.2%를 차지했다. 이주배경인구란 본인이나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 이 비율이 5%를 넘으면 다문화 사회로 본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이민 후진국이다. 외국인·이민자에 대한 배척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일부 극우 진영에서는 선거 개입 음모론과 맞물려 중국인뿐 아니라 오래전 한국에 정착한 화교, 중국 동포마저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다. 좌파 진영의 맹목적 반일주의 역시 동전의 다른 면일 뿐이다.

정부의 이민정책도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법무부 외국인정책실무위원장을 지낸 김태환 한국이민정책학회 고문(전 회장)의 저서 ‘다문화 사회와 한국 이민정책의 이해’에 따르면 우리나라 이민정책은 ‘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민자’에만 초점을 맞춘 데다 각자에 대한 정책 목표가 전혀 달랐다. 이주노동자 정책은 저임금 노동자를 수입하되 과도한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 기간 이후 영주를 철저히 제한했다. 그 결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계속되고, 불법체류자 감소에도 실패했다. 반대로 여성결혼이민자에 대해서는 복지 혜택을 주고 사회에 동화시키고자 했다. 이는 한국에 쉽게 들어오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을 이용하는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정책이다. 김 고문은 “정부의 이민정책은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 유학생, 탈북민, 난민 등 한국 사회 이민자들을 구분하지 말고 사회 통합을 위한 정책 대상으로 함께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 참고

■ 카스 무데 교수

유럽과 북미 포퓰리즘, 극단주의, 이슬람 혐오 등 분야를 주로 다루는 극우 운동 연구의 권위자다. 세계 각국에서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정당의 영향력이 커져 온 현상을 역사적으로 조명하면서 그 배경에 경제적 박탈감과 문화적 정체성 위협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 관용의 역설

철학자 칼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 7장 주석을 통해 제시한 개념으로, ‘무한한 관용은 관용 자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무제한으로 관용을 베풀면 오히려 불관용 세력이 이를 악용해 사회를 장악할 수 있으므로, 열린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는‘불관용을 관용하지 않을 권리’를 주창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훈 기자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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