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윤영돈 인천대 학산도서관장
지난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독서국가 선포식’에 다녀왔다. ‘독서는 선택이 아니라 국가 생존전략’이라는 결연한 의지와 ‘읽는 인간만이 인공지능(AI)을 주도한다’는 기치가 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국가와 전문가들이 이토록 독서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렌드 2026’ 키워드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는 AI가 많은 것을 자동화할지라도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는 반드시 인간이 참여해야 함을 역설한다. 여기서 핵심은 단순히 인간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을 갖췄느냐다. 사태의 본질을 꿰뚫는 문해력과 판단의 결과가 미칠 영향을 헤아리는 상상력은 기계적 데이터가 아닌 구체적인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통해서만 길러지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AI 시대의 미래지향적인 교육은 책을 읽고 질문하고 대화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이른바 책을 매개로 비판적 사고와 공감 능력을 겸비하고 협업 역량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인천대 그레이트북스센터는 도서관 내에 설치되어 있다. 2019년 이래로 세인트존스칼리지(St. John’s College)의 고전기반 토의세미나 모델을 한국 상황에 적용하여 교과 및 비교과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고전과 명저’로 토의세미나를 진행한 후, 팀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전기반 토의세미나는 대학의 담장을 넘어 일반고 및 대안학교로 확장되고 있다.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사고의 외주화’를 조장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인간은 AI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실존적 궁지’에 내몰리게 된다. 화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폴라니(M Polanyi)의 관점에서 보면, AI가 제공하는 명시적 지식은 그 자체로 유용할지 모르나 인격적 헌신이 결여된 수단적 정보에 불과하다. 반면 독서는 내 삶의 서사와 결합된 ‘암묵적 차원’을 형성하여, 휘발성이 강한 정보를 책임감이 수반된 ‘인격적 지식’으로 승화시킨다.
AI 시대에 고전과 명저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생각의 근육’을 만드는 훈련 과정이고,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는 용기를 배우며,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더 나아가 함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레비나스(E Levinas)가 강조한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윤리적 연습이다. 텍스트를 매개로 다양한 시선과 견해가 공존하고 수용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관점의 공존을 환대하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결국 책을 펴는 행위야말로 AI 시대를 주도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담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생존 전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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