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사람과 부근을 만들기
샹뱌오 지음│박우 옮김│글항아리
관계 맺기 피로 느끼는 현대인
낯섦 넘어서 ‘무감각’으로 확장
사회인류학자인 저자 샹뱌오
관계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
고립과 밀착 사이 ‘부근’ 제안
“거창한 연대 아닌 관심부터”
요즘은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 관계를 맺는 일은 점점 더 피로한 과제가 됐다. 학교와 직장, 동네 어디에서든 우리는 룸메이트와 직장 동료, 동기와 이웃과의 교류를 최소화한다.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가능한 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관리’한다. 그렇게 우리에게 대부분의 타인은 ‘낯선 사람’이 된다. 문제는 그 낯섦이 더 이상 긴장이나 호기심, 경계조차 아닌 무감각의 상태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낯선 사람은 근대 사회의 산물이다. 전근대 공동체에서 낯선 이는 하나의 사건이었고, 한마을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를 내밀하게 알고 있었다. 반면 근대 이후 우리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멀리 있는 낯선 사람을 상상하고, 그들과 자신을 동일한 틀 속에 놓으며 사회는 확장됐다. 정치·역사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라고 부르는 이 존재들은 낯섦을 원동력으로 사회를 진보시켰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낯섦의 의미는 달라졌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사회인류학연구소장인 저자 샹뱌오는 오늘날의 상황을 ‘낯섦화’라고 부른다. 이는 단순히 낯선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 아니다. 낯선 이를 경계하거나 두려워하는 단계조차 넘어, 관계 전반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상태를 가리킨다. 타인뿐 아니라 주변 환경, 나아가 자기 자신에게까지 낯섦이 확장되는 현상이다. 샹뱌오가 지적하는 현대 낯섦화의 핵심 감각은 ‘무감각’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이 경향은 두드러진다. 타인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맺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준낯선 상태’를 유지하고, 아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긴장도가 높아진다. 그의 연구는 중국 사회를 주된 배경으로 하지만, 연애와 결혼, 관계 자체를 미루거나 거부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풍경과도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이 책에서 샹뱌오가 제시하는 대안적 개념이 바로 ‘부근’이다. 부근은 완전히 낯설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친밀하지도 않은 영역이다. 그는 완전한 고립과 밀착된 관계 사이에 위치한 이 중간지대가 현대인에게 절실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 부근이 실제로 가능한지, 공동의 관심사와 감각이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실험에 가깝다. 이를 위해 샹뱌오는 예술가, 다큐멘터리 감독, 인류학자, 도시 설계자, 동물원 원장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부근’을 포착해온 이들과 마주 앉는다. 이 책의 대화는 이론을 앞세우기보다 각자의 현장에서 포착한 경험이 어떻게 사고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첫 번째 대화 상대인 화가 류샤오둥은 부근의 필요성을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는 작업실에 머무르기보다 현장으로 나가 걷고, 보고, 기록하며 그림을 그려왔다. ‘진청 소년’ 연작에서 그는 함께 자란 친구들의 수십 년에 걸친 변화를 집요하게 관찰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포착한 것은 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갈등’의 가치다. “낯선 사람과의 교류는 상상력을 열어젖히고 관대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격렬한 충돌을 동반한다.” 그러나 바로 그 충돌이 생활을 살아 있게 만든다.
류샤오둥과 샹뱌오의 대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쿨함’에 대한 재정의다. 요즘 젊은 세대에 필요한 쿨함은 무심함이나 거리두기가 아니다. 그것은 판단할 용기이며, 동시에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이해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버릴지 아는 능력. “쿨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버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집어 드는 용기”라는 정의는 관계를 회피하는 태도와 분명히 구분된다.
또 다른 대화자인 도시 전문가 류웨라이는 부근을 만드는 보다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그가 상하이에서 진행해온 화원 조성 프로젝트는 낯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 장치다. 이 책에서 샹뱌오는 이를 ‘손잡이’라고 부른다. 화원이라는 매개는 개인의 적극성을 집단적 조정력으로 전환시키고, 미학과 쓸모라는 공통의 기준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갈등도 발생하지만, 화원이 공용 공간이라는 원칙 아래 대화가 시작되고 공공적 가치관이 형성된다. 작은 ‘커먼즈’의 탄생이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부근 만들기’는 거창한 연대나 윤리적 당위가 아니다. 매일같이 마주치지만 가장 낯선 존재인 경비원을 연구한 인류학자,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소외감을 극복하는 청년 공장 노동자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낯선 존재인 동물을 공간의 중심에 두려고 한 동물원 원장 등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각기 다른 환경에서 타인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 ‘손잡이’를 발견한 사람들이다. 낯선 사람을 다시 관찰하고, 상황을 만들고, 머무를 시간을 확보하는 것. “머무름은 거주와 안정을 만들어내, 사고가 경험을 ‘붙잡을’ 수 있도록 하고, 실제 세계에서 ‘뿌리내리는’ 느낌을 갖게 한다.” 샹뱌오의 사회학은 삶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삶과의 접촉면을 집요하게 늘려간다. 낯선 사람을 피하는 사회에서, 그는 낯섦을 다시 관계의 가능성으로 되돌려놓는다. 416쪽, 2만3000원.
신재우 기자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