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만식 인하대 초빙교수, 前 한국은행 선임연구위원
현 정부의 목표인 코스피지수 5000이 달성되며 많은 국민이 국내 증시 활황에 환호하는 사이, 통상 협상과 맞물린 원·달러 환율은 전년 평균 1422원으로, 외환위기 직후의 평균 1395원을 웃돌았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도 일별 환율이 1450원 이상이 대부분이다. 국채금리는 10년물 기준으로 정책금리보다 1%p 이상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이 계속돼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불안한 신호들이 관찰된다.
환율과 금리의 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향후 ‘기대물가’가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게 중요하다는 점에서,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정책과 관련된 정책적 태도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은의 정책 행보를 보면, 통화정책 운용 과정에서 이른바 ‘동태적 비일관성’(time inconsistency)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학계는 오래전부터 통화정책의 동태적 비일관성 가능성에 대해 경고해 왔다. 사전에 공표된 물가안정 원칙이 경기 대응이나 단기 충격 완화라는 사후적 판단에 따라 반복적·재량적으로 수정되면 정책 신뢰가 약해지고 기대 인플레이션이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이 정책의 비일관성을 기정사실로 인식할수록 물가안정과 거시경제의 성과는 훼손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런 관점에서 근래 한은의 정책 메시지는 물가안정이라는 통화정책의 최우선 목표에 대한 믿음에 혼선을 준다. 한은 총재의 2026년 신년사에서는 물가안정보다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상대적으로 강조됐고, 물가 역시 환율 변동성과 연계된 맥락에서 제한적으로 언급됐다. 이는 자본 이동의 자유, 환율 안정, 통화정책 독립성 가운데 2가지만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이른바 ‘정책 트릴레마(3중 딜레마)’를 연상시킨다. 환율 안정이 우선순위로 부각될수록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약해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외환시장 안정과 관련해 ‘정부와 함께’ 판단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이나, 환율 안정을 위한 국민연금의 환헤지 정책 변경 논의에 적극 참여하는 행위도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국민연금은 장기적 수익성과 안정성을 기준으로 운용돼야 하는데, 외환정책의 수단으로 인식되는 순간 시장은 한은이 환율 관리에 나서고 있다고 받아들인다. 이런 인식 자체가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일관성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현재의 환율과 금리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일부 설명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비일관성 논의의 핵심에는 중앙은행의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 있다. ‘알레시나’와 ‘서머스’ 등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강할수록 인플레이션 수준은 낮고, 거시경제 성과는 더 안정적인 경향을 보인다. 반대로 물가안정에 대한 의지가 흔들린다는 인식이 확산될수록 향후 인플레이션을 다시 억제하기 위한 정책은 더 큰 경기 둔화와 실업 증가라는 비용을 수반할 가능성이 커진다.
비일관성에 대한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한은은 물가안정이 통화정책의 핵심 목표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해야 한다. 현실 대응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재량적 판단이 불가피하더라도,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단호하며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통화정책의 장기적 효과성을 확보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조건일 것이다. 아울러, 국민이 이러한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 역시 통화정책의 비일관성을 억제하는 중요한 시장 규율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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