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범 산업부장

 

그가 한국서 사업 시작했다면

청문회만 수십 차례 불려가고

테슬라 공중분해 사라졌을 것

 

혁신가가 아니라 악의 축 낙인

기업가정신 ‘국가 선택’ 문제

중국과 맞짱 뜰 혁신가 키워야

현존하는 인물 중 ‘기업가 정신의 화신’을 꼽으라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및 스페이스X CEO를 맨 먼저 떠올릴 것이다. 허황한 아이디어로 치부되던 자율주행과 휴머노이드 로봇, 화성 이주선, (인간과 기계를 잇는) 뉴럴링크 등은 속속 현실화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는 전기차 공장에 취업해 시범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테슬라는 올해 말 연간 100만 대 규모의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라인 구축이라는 야심 찬 계획을 내놓았다. 내년에는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테슬라의 감독형 완전자율주행(FSD) 차량은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서울 강남역 사거리를 활주하고 있다. 자율주행이 더는 실험실이나 시험 구간에 머무는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스페이스X는 올해 말 화성 탐사를 위한 무인 우주선을 실제로 발사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거침없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가는 머스크를 보며 자문하게 된다. 그가 한국에서 사업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만나본 기업인들은 죄다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혁신가는커녕 ‘악의 축’으로 낙인 찍혀, 벌써 수차례 교도소 담장을 넘나들고 집단소송과 노사 갈등의 표적이 됐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배임죄다. 정부는 전례 없는 경영권 견제 장치를 담은 상법 1·2차 개정에 이어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을 빼앗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규제를 담은 3차 개정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정작 약속했던 배임죄 개선은 형식적인 손질과 시늉에 그치고 있다. 천문학적 적자를 감수하며 미래 기술에 베팅하는 화성 우주선 사업을 한국에서 추진했다면, 성과를 내기도 전에 배임죄 고발은 물론 집단소송에 직면했을 것이다. 특히, 1차 상법 개정 때 반영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조항은 혁신과 도전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경제계가 거듭 호소문을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임죄는 처벌 대상과 범죄 구성요건이 불분명해 경영진의 합리적인 경영 판단까지 처벌할 위험이 크며, 이는 신산업 진출과 과감한 투자 결정을 가로막아 기업가 정신을 저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노동 이슈는 더 치명적이다. 오는 3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휴머노이드 로봇의 현장 투입은 극렬한 노사 대립의 화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조법 개정으로 경영상 판단이라도 근로 조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경우, 단체교섭 또는 쟁의 대상이 된다. ‘노조 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노사 대립은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다. ‘한국판 옵티머스’ 구상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조차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는 없다”고 했지만, 현대자동차노조는 벌써 관계사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단 1대라도 생산 현장에 들어오면 판을 뒤엎겠다며 벼르고 있다.

자율주행도 마찬가지다. 테슬라의 FSD 서비스가 국내에 상륙하자 한국 자동차 산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강남역 사거리를 실제로 주행하는 FSD 차량과 달리, 국내 기업들은 각종 인허가와 규제 장벽에 막혀 실증을 통한 데이터 확보조차 쉽지 않다. 한국과 자율주행 선도국 간 기술 격차는 최소 3∼4년이다. 한국 기업들의 자율주행 누적 실증거리는 1300만㎞ 남짓에 불과한 반면, 테슬라는 FSD 누적 주행 데이터가 수십억 마일을 넘어섰다. 기술의 밑거름인 실증에서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다. 머스크가 한국에서 사업을 했다면 국회 청문회만 수십 차례 불려 다녔을 것이 뻔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 비판한 행동을 한국에서 했다면, 범정부 차원의 전방위 조사 세례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쿠팡 사태만 보더라도, 정부 기관 10여 곳에서 파견된 수백 명의 공무원이 한국 본사에 상주하며 먼지털기식 조사를 벌이고 있다.

기업가 정신은 더 이상 개인의 자질이나 재능 문제가 아니다. 국가적 선택 문제다. 머스크를 감방에 보내고 테슬라를 공중분해하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중국 전체와 맞붙어 주도권을 겨룰 위대한 혁신가와 혁신 기업을 키워내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차이나테크 공습은 날로 위세를 더해간다. 이젠 한국 경제와 정부가 답해야 할 시간이다.

이관범 산업부장
이관범 산업부장
이관범 기자
이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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