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尹·韓과 보수의 위기
정치적 검증과정 없이 지도자 반열에 올라… ‘유주얼 서스펙트’ 세계관으로 통합 외면
책임윤리 실종 → 보수의 위축 불러… 尹은 계엄 - 탄핵으로, 韓은 내란몰이 - 당게로 파국
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이라는 과오의 책임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내란·탄핵몰이라는 선택의 책임이 있다. 적어도 보수 진영과 국민의힘 지지층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렇다.
두 사람은 많이 닮았다. 검찰 출신(검출)으로 검증 없이 단박에 정치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는 점에서, 서로 반목·갈등하다 결국 보수의 전반적 위기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공동책임자가 됐다는 점에서, 둘은 ‘이란성 쌍생아’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에 따른 탄핵으로, 한 전 대표는 당원게시판 사태에 따른 제명으로 파국의 길을 걷게 됐다는 점도 비슷하다.
◇‘유주얼 서스펙트’ 세계관
검출 윤과 한은 정치권 진입과 동시에 일약 정치 지도자로 올라섰다. 윤은 정치 입문 1년도 안 돼 대통령이 됐고, 한은 중앙 정치무대 진입과 함께 집권당 당대표 격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두 사람 모두 ‘배우는 정치인’의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결단하는 지도자’ 역할을 요구받았다. 이게 비극의 씨앗이었다.
‘정치학교’에서 검증받지 않은 검출들은 세상을 ‘검사 vs 피의자’라는 이분법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나 아닌 타인을 ‘유주얼 서스펙트’로 대하는 습성이 있다. 정치의 본질인 통합과는 반대된다. 정치는 설득과 타협의 예술이다. 하지만 검사는 반대자를 설득·타협의 대상이 아닌 제거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정치의 본령과 충돌한다.
윤의 권력 독점욕과 한의 조기 대권욕에 의한 조기 차별화 및 당정 갈등은 여권 분열의 동인이었다. 윤은 비상계엄 선포라는 극단적 선택을 통해 헌정 질서 파괴 논란을 일으켰고 탄핵당함으로써 보수 진영 전체를 방어 불능 상태로 몰아넣었다. 한은 윤에 대한 성급한 내란몰이로 친한(친한동훈)계의 탄핵 찬성을 이끌었고, 내부 분열로 보수의 위축을 초래했다. 한 사람은 비상계엄으로, 다른 한 사람은 내란·탄핵몰이로 보수의 정치적 출구를 동시에 닫은 셈이다.
둘은 상승 속도만큼이나 추락도 닮았다. 윤은 집권 2년도 못 채운 채 권좌에서 쫓겨났고, 한은 정치권 진입 2년여 만에 소속 당에서 제명당했다. 검사라는 독특한 직업적 세계관이 정치의 장에 강제로 이식될 때 벌어지는 구조적 비극이다. 검출 홍준표 전 의원은 “검사가 정치권에 진입해 ‘검사 물’을 빼려면 중앙 정치에서 10년은 단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정치는 신념윤리를 넘어, 책임윤리의 영역이다(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권력은 곧 신념윤리에서 책임윤리로 나아가는 정치적 숙성을 통해 행사돼야 한다.
검사는 전형적인 신념윤리의 직업세계다. 옳고 그름이 명확해야 하고, 불의에 대한 타협은 곧 배신이며, 결과보다 판단의 순수성이 중요하다. 정치의 윤리는 책임윤리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이 중요하고, 불완전한 선택을 감내해야 하며, 공동체 전체가 치를 비용까지 계산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윤과 한의 공동실패는 검사의 신념윤리를 정치의 책임윤리로 바꾸지 못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두 사람의 행동은 달랐지만, 검찰의 태반에서 배태된 ‘내가 옳다’는 신념윤리는 동일했다. 검사 때의 ‘유주얼 서스펙트’ 세계관과 신념윤리를 정치에 그대로 이식했다.
여기에 카를 슈미트를 얹으면, 두 사람의 역할은 더욱 또렷해진다. 슈미트에 따르면 정치의 본질은 ‘친구와 적’의 구분이다. 그런데 이 구분이 정치적 경쟁으로 이뤄지지 않고 도덕적·사법적 판정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순간, 상대는 설득 대상이 아니라 제거 대상이 된다. 정치를 도덕화하면 출구는 사라진다.
특히 한이 ‘계엄=내란 자백’ 프레임을 채택한 순간, 사안은 정치적 수습의 영역에서 도덕적·형사적 단죄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윤의 ‘질서 있는 퇴진’은 불가능해졌고, 탄핵이 유일한 경로가 됐으며, 보수 진영은 비도덕적 ‘헌정 위반 집단’이 됐다. 이게 바로 정치의 도덕화가 낳은 파국이다. 윤은 보수를 무너뜨린 ‘과잉 권력의 검사’이고, 한은 보수를 분해한 ‘과잉 도덕의 검사’다. 방식은 달랐지만 둘 다 정치의 본령인 통합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란성 쌍생아
윤은 20대 대선을 11개월 앞두고, 한은 22대 총선을 4개월 앞두고 보수 정치권에 영입됐다. 전국 단위의 주요 선거를 앞두고 긴급 투입된 ‘검출 보수’는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비상계엄은 정치적·헌정적으로 잘못된 선택일 수 있지만, 내란죄의 성립 여부는 사법 판단의 영역이지 정치적 구호로 선점할 사안은 아니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탄핵은 ‘자동 반응’이 아니라 ‘신중한 판단’의 영역이었어야 했다. 헌정사적으로도 윤의 ‘비상계엄→정치적 수습→조기 권력이양’이라는 경로는 충분히 상정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실제로 윤은 계엄 후 여론의 질타를 받고는 ‘질서 있는 퇴진’의 방법과 시기를 고민했었다.
그 선택지가 현실화됐다면 윤은 계엄에 대한 책임을 지되, 보수 진영은 ‘집단적 낙인’을 피할 수도 있었다. 한은 그 선택지를 끊었다. ‘계엄=내란 자백’을 선창하며 탄핵의 불가피성을 가장 강한 언어로, 가장 단정적으로 선언했다. 이 한마디로 도덕적·형사적 유죄 프레임이 힘을 받았고, ‘계엄=내란=탄핵’이라는 트랙이 완성됐다.
탄핵의 정당성을 가장 강하게 확증해 준 인물이 보수 내부에서 나왔고, 그의 정치적 동지들이 1호 당원인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으며, 그 결과 탄핵은 정권교체의 도덕적 면허증이 됐다. 그 면허증을 들고 집권한 인물이 바로 이재명 대통령이다.
윤은 보수를 위험에 처하게 했고, 한은 보수를 분열하게 했다. 위험한 진영이든 분열된 진영이든 확장 정치는 불가능하다. 윤은 ‘내가 옳다’는 확신으로 계엄을 선택했고, 한은 ‘나는 다르다’는 확신으로 내란·탄핵몰이의 선두에 섰다. 두 사람은 성격도 다르고 행동도 달랐지만, 정치적 파국의 유전자는 똑같았던 ‘이란성 쌍생아’다.
◇역사 속으로
비상계엄을 일으킨 윤은 탄핵으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고 있고, 내란·탄핵몰이를 이끌었던 한은 당원게시판 사태로 제명돼 돌아오기 힘든 길을 걷고 있다. 둘은 보수의 전반적 위기를 초래했다는 공동책임을 걸머지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중이다. 보수는 이것을 받아들여야 다음 기회가 있다. 굿바이.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설명
‘신념윤리’는 행위의 도덕적 의도와 신념을 중시하고,‘책임윤리’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윤리. 막스 베버는 정치 영역에서 두 윤리가 모두 필요하다고 봤지만, 책임윤리에 우선권을 둠.
‘유주얼 서스펙트’는 범죄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용의자 선상에 올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수사 용어로 ‘잠재적 혐의자’라는 뜻. 이 용어를 제목 삼아 1995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가 있었음.
■ 세줄 요약
‘유주얼 서스펙트’ 세계관: ‘정치학교’에서 검증받지 않은 검사 출신 정치인들은 세상을 ‘검사 vs 피의자’의 눈으로 바라봐. 윤석열·한동훈이 그런 경우로, 이런 인식은 반대자를 설득·타협의 대상으로 보는 정치와 충돌.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정치는 신념윤리를 넘어 책임윤리의 영역임. 두 사람 모두 ‘배우는 정치인’의 단계를 뛰어넘어 ‘결단하는 지도자’ 자리에 오름으로써 정치적 숙성의 기회를 놓쳐. 둘은 보수 전반적 위기의 공동책임자.
이란성 쌍생아: 윤은 계엄에 따른 탄핵으로, 한은 당원게시판 사태에 따른 제명으로 파국을 맞아 역사 속으로. 둘은 정치적 파국의 유전자를 공유한 ‘이란성 쌍생아’임. 보수는 이 점을 받아들여야 다음 기회가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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