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승배 체육부장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본토 개막전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최종라운드가 캘리포니아주 라킨타의 피트 다이 스타디움 코스에서 지난달 26일 열렸다. 모처럼 최종라운드 챔피언조에서 경기하는 김시우의 이 대회 5년 만의 우승을 기다리며 이른 새벽부터 TV를 켰다. 3라운드까지 한 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었는데, 챔피언조 상대가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다. 걱정 반 기대 반 속 1번 홀에서 셰플러가 버디를 잡으며 동타를 만들었다.

하지만 2번 홀에서 김시우가 다시 버디를 잡고 셰플러가 보기를 하면서 2타 차까지 벌어지자 기대는 더욱 커졌다. 이때만 해도 김시우의 멘털을 의심하지 않았다. 2009년 PGA챔피언십에서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와의 최종라운드 챔피언조 맞대결에서 압박을 견디며 역전 우승하고 캐디백을 번쩍 들어 올리던 세리머니가 잠시 소환되기도 했다. 그런데 셰플러가 보기 이후 다음 홀에서 곧바로 바운스 백(Bounce back)을 한 건 아니지만, 파로 나쁜 흐름을 끊은 뒤 4, 5번 홀 연속 버디로 치고 나가자 김시우가 보기를 범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경기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해 6∼9번 홀에서 무려 4타를 잃고 말았다.

셰플러는 2번 홀 보기가 오히려 약이 됐다. 그는 실수 이후의 태도가 다른 선수들과 다르다. 통계로도 증명된다. 지난해 그는 PGA투어에서 바운스 백 비율이 36.5%로 2위와 6%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도 인간이라 실수를 한다. 다만, 그의 실수는 다음 홀로 잘 이어지지 않고 곧바로 회복한다. 흔들린 샷 뒤에도 루틴은 같고, 표정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물론 실패를 통제하는 이런 능력은 모두 연습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2위 그룹과 타수 차이가 많이 난 17번 홀 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트리며 더블보기를 범했다. 그도 방심하는 것 같았다. 셰플러는 그러나 18번 홀에서 그의 스타일로 바로 돌아왔다. 코스를 따라 그린 왼쪽까지 이어진 워터해저드를 피해서 안전하게 티샷을 날렸고, 핀 오른쪽을 겨냥한 아이언샷이 그린을 벗어나자 칩샷으로 핀에 붙이며 파를 지켜냈다. 셰플러는 이날도 자신이 세계랭킹 1위임을 굳이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화려한 기술 샷이나 공격적 플레이 등 스포트라이트를 의식하지 않고 그저 자신만의 루틴을 반복했다. ‘멋진 골프’가 아니라 ‘이기는 골프’ 그 자체였다.

중심이 무너진 듯한 그의 폼도 정형에서는 좀 벗어나 있다. 전문가들은 셰플러가 ‘폼’이 아니라 ‘구조’로 경기한다고 한다. 스윙, 루틴, 멘털, 코스 매니지먼트가 하나의 시스템처럼 움직였다. 컨디션이 좋건 나쁘건 크게 무너지지 않는 게 다 이 때문이다.

반면, 감각적 플레이를 많이 하는 김시우의 템포는 자신감이 떨어지고 생각이 많아지면서 결정이 늦어지는 등 일정하지 않았다. 셰플러의 ‘안 무너지는 골프’에 김시우의 리듬과 선택이 무너진 것처럼 보였다. 셰플러는 실수를 통제하는 능력을 올해 첫 출전 게임부터 보여줬다. 바운스 백을 일반인들의 삶으로 치환한다면 ‘전화위복’ 정도로 표현될 것 같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는 멘털을 루틴으로 가진다면 누구든 천하무적이 되지 않겠는가.

방승배 체육부장
방승배 체육부장
방승배 기자
방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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