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우 고려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더불어민주당이 자사주 처분을 압박하는 3차 상법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태세다. 구조조정 때 억지로 떠안은 자사주까지 한꺼번에 소각하면 그 기업은 재무구조가 나빠지고 경영권에 치명상을 입는다. ‘자사주’는 상법에는 없는 용어로 ‘자기주식’이 본명이다. 자사주라고 하면 대주주나 임직원이 취득하는 경우와 구분하기 어렵다. 주식회사가 현금 또는 다른 대가를 받고 주식을 발행하면 자산과 자본이 병행 계상된다. 자본은 발행주식 액면총액인 자본금에 할증 또는 할인 발행차금을 가감해 표시한다. 회사의 자기주식 취득은 자본의 환급 성격이 있지만, 소각해 감자하려면 주주총회 결의가 필요하다.
자기주식은 공표되는 재무제표에서는 자본의 차감 항목으로 표시된다. 1970년 이전 회계학 교과서에서는 자기주식의 자산 성격을 설명하기도 했지만, 회계기준으로 정해진 일은 없다. 일각에서 자기주식은 자산이 아니라 자본에서 차감할 항목이라며 소각의 당위성을 강조하지만, 회계상 표시 방법과 소각은 관련이 없다. 자기주식은 주가를 끌어올릴 목적 등의 자발적 취득과 채권행사와 인수합병(M&A) 및 지주회사 전환 등의 비자발적 취득으로 구분된다.
금융회사들이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된 것으로 판단해 자기주식을 대량 취득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업이 불황에 빠졌을 때 부실 조선사가 매수한 자기주식이 폭락해 정리를 맡은 산업은행이 혼난 일도 있다. 이런 자발적 취득의 경우는 기한을 정해 소각 등의 처분을 강제할 이유도 있다. 그러나 M&A나 지주회사 전환에서 파생된 자기주식의 소각은 당초 구조조정 취지에 맞지 않고, 규모가 큰 경우 시장에 충격적일 수밖에 없어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포함시키더라도 충분한 시간 여유를 줘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의 부채비율 200% 규제는 분자인 부채 감축이 목표였으나, 분모인 자본을 부풀리려는 계열사 간의 순환출자가 유행했다. 이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해소를 명분으로 지주회사가 권장됐다.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모회사와 자회사 간의 지분 교환이 필요했고, 그 결과 모회사가 대량의 자기주식을 껴안았다. 친인척 대주주들 간의 그룹 분할이었던 LG와는 달리 SK는 지주회사와 사업자회사 간의 지분 교환이 많았고, 아직도 상당한 자기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계열사 분할이 활발했던 HD현대·셀트리온·롯데지주·한화 등도 비자발적 자기주식 보유가 많다.
우리나라에는 창업자가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황금주나 포이즌필 등의 경영권 보호장치가 없다. 미국 쿠팡의 김범석 의장은 보유한 클래스B 주식 1주에 대해 일반주주의 클래스A 주식보다 29배의 차등의결권을 보장받아 적은 지분으로 74%의 권한을 행사한다. 거부권 행사만 가능한 황금주보다 훨씬 강력하다. 이런 경영권 특례가 쿠팡이 ‘한국에서 영업하고 미국에서 지배’하는 구조를 선택한 이유다. 자기주식이 경영권을 지킨 사례는 소버린의 SK 공격 당시에 이미 경험했다. 자기주식 보유와 관련된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는 정리하되 취득 사유를 가리고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한다. 비자발적 자기주식은 당초 취득 사유에 맞춰 적절히 정리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경영권 보호장치 도입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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