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영 경제부 차장

최근 외환보유액 규모의 적절성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외환보유액은 펀더멘털을 고려해 충분히 쓸 수 있는 양”이라면서 “부족하다는 우려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해 대외부문평가보고서(ESR)에서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발생 가능한 광범위한 외부 충격에 대응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1월 말 기준 4259억1000만 달러로 세계 9위 수준이다.

외환보유액의 문제는 ‘절대 규모’가 아니라 ‘방어력’에 있다.

가만히 있었다면 운용수익으로 늘어났을 외환보유액은 두 달 연속 고환율 방어를 위한 소모 영향으로 수십억 달러씩 감소했다. 지난해 12월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외환 시장 개입으로 수십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쓰고도 한 달도 되지 않아 환율은 제자리로 돌아온 바 있다. 한은이 액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지난 12월 한 달간 감소한 외환보유액 규모인 26억 달러 이상을 썼을 것이라는 추산이 나온다. 통상 12월은 은행들의 예치금이 들어오며 잔액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지난해 3분기에도 한은은 환율 방어를 위해 17억4500만 달러를 순매도한 바 있다. 환율 방어에다 연간 최대 2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직접투자 독촉까지 받고 있으니 ‘방어력’을 생각한다면 과연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외환보유액의 적정 규모와 관련, 그 나라의 몇 개월치 수입을 충당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는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연간 총수입액 6317억 달러를 기준으로 약 8개월 수준이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국제 기준(5개월)으로 보면 안정적이지만 일본은 19개월, 중국은 14개월로 주변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환보유액 비중 역시 한국은 22% 수준에 그치지만 일본은 30%, 대만은 70%를 넘는다. 국제기구 기준으로 봐도 현 외환보유액은 최소 필요 수준에 가까울 뿐, 결코 여유 있는 규모가 아니며, 현 규모의 두 배 정도가 적정하다는 주장도 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현재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4000억 달러 밑으로 내려가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진다”고 짚었다. 지난해 11월만 해도 4300억 달러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가용 범위도 200억 달러 남짓에 불과한 셈이다.

한국은 신흥국에 비해 외국인 자금 유출입 속도가 훨씬 빠르다. 이 총재는 유럽의 국가들을 언급했지만, 기축통화인 유로화를 쓰는 국가들과 한국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일본처럼 무제한에 가까운 통화 여력도 없고, 기축통화국도 아니다. 대미 직접투자와 환율 방어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GDP 대비 외환보유액 수준을 넉넉하다고 볼 수 있을까.

‘외환보유액이 충분한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한국 경제가 감당해야 할 외부 충격의 크기에 비해 방패가 충분히 튼튼한가’라는 구조적 질문이다. 쪼그라들고 있는 4260억 달러는 우리에게 든든한 ‘방패’가 되고 있는가.

박세영 경제부 차장
박세영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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