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미국 정치에서 맥주는 서민성을 상징한다. 선거 시즌 때마다 “어느 후보와 맥주를 마시고 싶은가”를 묻는 조사가 많은데, 유권자들이 이지적이나 거리감이 느껴지는 후보보다 친근감이 있는 소탈한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2004년 대선 당시 민주당 존 케리 상원의원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도전했지만, ‘맥주 호감도’가 높은 부시가 재선됐다. 케리는 이라크전 수렁에 빠져들던 부시보다 정치외교적 역량이 뛰어났지만, 차가운 이미지로 인해 낙선했다. 2016년 대선 때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정치적 경력이나 역량 면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앞섰음에도 맥주 호감도에서 밀린 결과 고배를 마셨다.
맥주가 보통사람들의 술이라면 와인은 엘리트의 술로 인식된다. 맥주는 부담 없이 어느 자리에서나 즐기는 주류이나 와인은 결혼식 파티나 의전 행사용 술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트럼프의 지지 기반인 마가(MAGA) 세력은 와인을 ‘잘난 체하는 유럽인들의 술’로 간주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가자지구 재건을 추진하는 평화위원회 참여를 거부하자 트럼프가 프랑스 와인 및 샴페인에 대해 2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배경엔 유럽과 와인을 동렬에 놓고 격하하려는 기류가 은근히 깔려 있다.
지난 1월 미네소타주에서 이민세관집행국(ICE) 요원이 쏜 총에 30대 백인 남성에 이어 여성이 사망한 뒤 과잉 진압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폭스뉴스가 미니애폴리스 시위를 ‘와인을 마시는 가정주부(wine mom)의 집단행동’으로 매도해 논란이 뜨겁다. 미국에서 와인맘은 ‘집안일과 육아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해 저녁에 와인을 마시는 교외의 중류층 백인 주부’를 뜻한다. 엘리트층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트럼프 지지 매체가 공권력의 과도한 진압을 문제 삼는 대신 시위 참여 여성들을 와인이나 마시고 난동을 부리는 주부들로 비하한 것은 정치적 편 가르기다. J D 밴스 부통령은 2024년 대선 때 민주당 성향 무자녀 여성을 “아이를 낳지 않고 고양이나 키우는 캣 레이디”로 조롱했는데 이번에도 희생자 애도는커녕 “정신 나간 좌파 주부”로 비난했다. 와인맘의 파워가 11월 중간선거 때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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