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희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타결한 한미 관세협약을 깨고,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와 자동차 등 품목 관세를 15%에서 다시 25%로 올리겠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 한국의 대미투자특별법이 두 달 넘게 국회에 계류돼 입법이 지연되는 것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산업통상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이 잇달아 미국으로 건너가 협의를 했으나 아무런 소득 없이 귀국했다.
미국의 이번 관세 인상 조치로 대미 수출 비중이 큰 현대기아차는 각각 추가로 연간 수조 원의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 더 우려되는 부분은 2, 3차 협력사들로 구성된 자동차산업의 하부 생태계이다. 지난해부터 15% 관세가 적용된 후 자금력과 수익성 악화에 시달려온 중소 부품 기업들은 이번 추가 압박으로 인해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 자동차 부품 기업이 파괴적 혁신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이다. 전동화 전환으로 내연기관 차량에 사용되던 상당수 부품이 사라지거나 부품 수 자체가 크게 줄고 있으며, 차량 가치사슬은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틀이 뒤바뀌는 대전환의 시대, 기존 내연기관 부품에 특화된 기업들은 주력 사업 자체를 포기하고 전환하거나 신기술 개발에 뛰어들어 환골탈태해야 하는 중대한 시기다.
이러한 때 관세 인상이라는 외부 충격이 더해지면 2, 3차 벤더들의 생존 및 변신 전략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들은 완성차 업체나 1차 협력사에 비해 협상력과 가격 전가(轉嫁) 능력이 현저히 낮다. 관세 인상으로 수익성이 나빠지면 ‘단가 인하 요구, 납품 물량 축소, 투자 축소 압박’이 동시에 가해진다. 이는 사업 전환과 신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더욱이, 관세 인상은 자동차산업의 공고한 협력 생태계에 균열을 만들 수 있다. 관세 비용을 완성차와 1, 2차 벤더 사이에서 누가 얼마나 떠안을지를 두고 분배 갈등이 촉발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산업 내 긴밀한 연계와 협업 관계가 손상될 수 있다. 결국, 단기적인 수익 감소를 넘어 국내 자동차 부품 산업의 전동화와 디지털 전환 능력 자체가 약해지게 된다. 기술 전환에 실패한 부품 기업이 시장에서 이탈하면, 이는 지역 산업 붕괴로 직결된다. 한번 무너진 공급망과 숙련 인력은 쉽게 복원되지 않으며, 이는 우리 자동차산업의 중장기 경쟁력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것이다.
국회의 입법 지연은 관세 인상이라는 즉각적인 비용으로 되돌아오고, 그 비용은 가장 취약한 부품 기업과 근로자에게 전가된다. 대미투자특별법을 비롯한 관련 입법은 특정 정부나 대기업을 위한 특혜가 아니다. 이는 급변하는 글로벌 통상 환경과 산업구조 변화 속에서 우리 자동차산업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방어선이다.
4일 여야가 대미투자특별법 심사 특위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은 늦었으나마 다행이다.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중심의 가치사슬 재편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관세 인상은 산업 전환의 마지막 버팀목마저 쓰러뜨릴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결단과 속도다. 국회의 빠른 입법만이 K-자동차 산업과 수많은 2, 3차 협력업체들을 지켜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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