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 책

 

서랍 정리하는 날

서선정 글·그림│봄볕

입춘이 지났다. 몸을 에는 매서운 추위는 곧 물러날 것이다. 마음에 먼저 봄을 들이기 위해 집 안을 정리해 보는 건 어떨까. 서랍 속 옷들에 스민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책 ‘서랍 정리하는 날’을 펼쳐 보아도 좋겠다.

아이의 집 거실에 옷가지가 널려 있다. 봄가을 코트와 여름 재킷, 주름치마와 긴바지, 니트 조끼와 목도리까지. 이사를 앞둔 엄마는 옷을 하나씩 정리한다. 아이는 좋아하던 반짝이 원피스를 꺼낸다. 유행이 지나 이제는 안 입는 아빠 바지도 나온다.

겉으로는 ‘옷을 정리하는 하루’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옷 하나 하나마다 가족이 함께한 시간이 풀려나오기 때문이다. 멜빵바지 무릎에 덧대어진 천에는 구멍을 기워 주던 할머니의 손길이 남아 있다. 바다를 닮은 줄무늬 티셔츠에는 조개껍데기를 줍느라 까맣게 타 버렸던 가족의 여름날이 묻어 있다.

서랍에는 할머니가 직접 만든 옷과 도구가 한가득이다. 할머니가 쓰던 오래된 재봉틀을 엄마가 쓰고, 할머니가 만든 엄마 코트를 나중에 아이가 물려 입을 거라는 장면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는 단순히 추억 속 인물이 아니라 가족 안에 여전히 함께하는 사람으로 살아난다.

작가에게 서랍은 켜켜이 쌓인 시간을 품은 기억의 저장고다. 옷이나 물건을 보관하는 공간으로만 알았던 서랍이 아이의 눈에 보물 상자처럼 보이는 것은 그 안에 값비싼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가족의 시간과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 이제 서랍을 정리해 볼까. 잊고 있던 기억을 꺼내보고 마음의 자리를 다시 가다듬고 싶어진다. 52쪽, 2만 원.

남지은 시인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