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레이크넥
댄 왕 지음│우진하 옮김│웅진지식하우스
‘개혁·개방’에 고속성장 이뤘지만 사회 옥죄는 中
국민을 창조적 주체로 인정하고 통제 내려놓아야
혁신 인프라 국가 만든 ‘말·규칙’에 발목잡힌 美
역동성 회복하려면 변화를 향한 열망 받아들여야
#1. 2008년, 중국에서는 베이징과 상하이를 잇는 고속철도 건설이 시작됐다. 완공되면 총 길이 1300㎞에 달하는 대공사. 불과 3년 뒤, 약 360억 달러를 투입한 노선이 개통됐다. 이후 10년 동안 이 철도를 이용한 승객은 약 13억5000만 명에 이른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모든 고속철도망을 합친 것보다 긴 고속철도망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2. 같은 해, 미국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고속철도 건설 관련 법안을 승인했다. 계획상 길이는 약 1200㎞. 그러나 17년이 지난 후, 완공된 것은 캘리포니아 내륙 센트럴밸리의 두 도시를 잇는 짧은 구간뿐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역을 추가해달라고 요구했고, 노선은 기존 계획에서 벗어나 산맥을 굽이굽이 통과하게 됐다. 첫 운행 시점은 2030년대 초반으로 미뤄졌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계획. 그러나 너무나 다른 결과.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두 나라는 어쩌다 이리 상반된 상황에 놓이게 됐을까. 이념과 정치 성향의 차이만으로 설명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중국 산업 분석가인 저자는 ‘브레이크넥’에서 이 차이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한다. 국가를 움직이는 직업군의 세계관, 다시 말해 ‘공학자의 나라’ 중국과 ‘변호사의 나라’ 미국이라는 대비다. 지난해 미국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책인 만큼 그 관점도, 분석도 독창적이다.
중국은 무엇인가를 세우고, 만들고, 완성하는 사람이 권력을 갖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국가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1980∼1990년대에 공학자와 기술자 출신을 정부 핵심부로 끌어올렸다. 2000년대 초 중국 공산당 최고 의결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공대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6대 주석인 후진타오는 칭화대 공대를 졸업해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10년을 보냈고, 7대 주석인 시진핑 역시 칭화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그 결과는 수치로 확인된다. 개혁개방 이후 미국의 두 배에 달하는 고속도로, 일본의 20배에 가까운 고속철도, 전 세계를 합친 것과 맞먹는 태양광·풍력 설비를 구축했다. 1980년대만 해도 옷가지를 만들던 선전은 2007년 세계 최대 아이폰 조립기지가 됐고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은 전기차, 통신 장비, 무인기 등 핵심 제조 분야에서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를 자연스럽게 차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말과 규칙’이 지배하는 나라가 됐다. 최근 10명의 대통령 중 절반이 법학 전공자이며, 하원의원 다수도 법률가다. 공학을 전공했거나 관련 경험이 있는 대통령은 두 사람뿐이다. 과거 미국도 공학자의 나라였던 시절이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운하와 철도 건설, 무기 개발, 달 탐사까지 밀어붙였던 이른바 ‘진보주의 시대’의 미국은 인프라 국가였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미국의 우선순위는 건설에서 규제로, 성장에서 소송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는 역설적이다. 각 분야에서 ‘최초’의 기록을 차지했던 혁신의 나라는 이제 그 경험을 상실했다. 핵무기 제조에 필수적인 부품 ‘포그뱅크(Fog Bank)’의 제조법이 사라져 이를 복원하는 데 6900만 달러를 써야 했던 일화는, 미국이 얼마나 공학적 능력을 상실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생산기록은 남아있지 않았고, 공정을 아는 공학자들은 모두 은퇴한 뒤였다.
그러나 저자는 중국의 공학자 국가 모델을 찬양하지 않는다. ‘공학자 정신’은 중국의 고속성장을 이끌었지만, 동시에 사회 전체를 옥죄는 강압적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사회를 감정과 관계의 집합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시스템으로 바라본다. 후커우 제도, 티베트와 신장 지역에 대한 강압적 통치, 그리고 ‘제로 코로나’ 봉쇄는 이 사고방식의 연장선이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한 자녀 정책이다. 35년간 중국에선 1400만 건의 임신중절과 1600만 건의 강제 불임 수술이 시행됐다. 허가받지 못한 아이들은 의료·교육의 권리 밖으로 밀려났다. 성장을 위해 개인을 억눌렀던 이 공학적 통치는 결국 사회 전체를 경직시켰다. 저자는 중국의 대중문화가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세계 시장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갖지 못하는 이유 역시 이 지점에서 찾는다.
책의 미덕은 어느 한쪽의 승리를 선언하지 않는 데 있다. 저자는 미국이 다시 역동성을 회복하려면 변화를 향한 열망을 받아들여야 하고, 중국은 국민을 관리 대상이 아닌 창조적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쪽에는 성장을 위한 절박함이, 다른 한쪽에는 통제를 내려놓을 용기가 요구된다.
끊이지 않는 미·중 갈등 속에 질문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로 향한다. 한국은 어떤 나라가 되고 있는가. 성장과 효율의 이름으로 개인을 통제하고 있는가, 아니면 규칙과 절차의 언어로 사회를 관리만 하려 하는가. 말과 기술, 통제와 성장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424쪽, 2만2000원.
신재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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