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전 서울대 교수

 

지난해 한 달간 머물렀던 대림동

다양한 세대 모이는 카페의 추억

 

마음 편히 머무는 곳이 ‘제3공간’

집은 1공간, 학교·직장은 2공간

 

평범한 곳에서만 느끼는 따뜻함

상업지역·관광지 카페와는 달라

지난해 봄 한국에서 한 달 가까이 대림동에 머물렀다. 중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주민 대다수는 한국계 중국인, 이른바 조선족이라 여러 언어 사용 실태를 조사할 수 있겠다 싶어서 이곳을 거주지로 삼았다. 거리에는 중국어 간판이 가득하고, 한국어와 중국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들이 귀에 속속 들어왔다. 식당마다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 냄새가 퍼져 나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특히 기억나는 곳은 중국차 전문 카페다. 중국차 종류도 많지만 한국차와 커피도 갖췄고, 과자 종류도 맛이 있었다. 더 좋은 건 분위기다. 주문하고 난 뒤 진동벨을 받아들고 자리를 찾노라면 20대부터 70대까지 손님들 연령대 범위가 서울 다른 지역 카페에 비해 훨씬 넓고, 주말이면 3대가 한 테이블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에 특별히 신경을 쓴 것 같지는 않지만, 깨끗하고 밝은 데다 여러 세대가 편하게 모여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라 따뜻한 느낌을 준다. 서울의 일반적인 카페보다 공간이 훨씬 넓어 활기차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살고 있는 미국 프로비던스의 집 근처에는 카페가 없다. 대신 15분 남짓 걸어가면 단골 카페가 있다. 큰길가의 이 카페는 주민들 사이에 꽤 인기가 있다. 대림동 카페보다 메뉴는 간소하지만 과자나 케이크가 맛있다. 인테리어에 특별히 신경 쓴 것 같지 않고 썩 넓지도 않지만, 여러 세대가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 언제 들러도 밝고 따뜻하다.

두 곳 모두 오래된 건물을 뉴트로 감성에 맞게 개조한다거나 하는 ‘힙’한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 즐겁게 대화를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훈훈하다. 인스타그램 감성에 어울리는 아늑하고 멋진 카페들은 하나같이 젊은 고객이 많고 음악 소리가 커서 이야기 나누기에 불편하다. 혼자 와서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음악 소리가 압도한다. 이런 카페 분위기가 좋을 때도 있다. 이런 공간일수록 커피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공간의 넓고 좁음을 떠나 이런 곳에서 열린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나 같은 60대 ‘아저씨’가 들어간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주위에 20대 손님들만 있다면 어쩐지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여러 세대가 함께 즐기는 공간이 편해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공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카페일수록 더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이는 ‘제3의 공간’ 이론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9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공간 분석에 관한 사회적 이론이다. 사람은 주로 세 가지 유형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제1의 공간’은 집, ‘제2의 공간’은 대개 직장과 학교다. 안정적이긴 하지만 서열에 따른 심리적 질서가 있다. 그런데 카페와 식당과 공원에는 그런 게 덜하다. 연령·젠더·인종 등을 따지지 않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제3의 공간’이다. 중립적이고,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덜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소통도 한결 느긋해진다. 혼자 화면을 보는 시간이 늘어난 요즘은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더 필요하다. 고독을 줄이는 일이 1990년대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은, 개인의 행복과 정신적 건강뿐 아니라 대화가 기본이 되는 민주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데도 중요하다.

대림동의 그 카페도, 이곳에서 자주 가는 단골 카페도 내게는 ‘제3의 공간’인 셈이다. 물론 도시 안에 여러 세대가 모이는 공간이 없지는 않다. 기차역과 공항에 가면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이동이 목적이다. 식당과 카페가 있긴 해도 행선지가 있으니 여유를 누리기 어렵다. 쇼핑 시설은 어떨까. 다양한 세대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막상 가 보면 주로 젊은 세대이거나 중년 여성이 압도적이다. 나이 많은 세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도시에서 카페·식당·공원은 그래서 중요하다. 주중에는 학교로 직장으로 가족 모두가 바쁘지만, 주말에는 모처럼 모여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중 가장 편한 곳은 카페다. 천천히 대화를 할 수 있는 식당은 대체로 비싸다. 공원이 없는 동네도 꽤 많다. 날씨에 따라 선택권이 제한된다. 그런데 카페라면 오케이다. 도시마다 카페가 많은 것도 이런 편리함 때문이 아닐까….

여러 세대가 모일 수 있는 카페들은 대체로 주택가 인근에 있게 마련이다. 상업지구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은 개성 없는 체인점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분위기 중심의 카페가 많다. 어쩌다 한 번 가는 건 좋지만, 어쩐지 답답한 느낌을 준다. 그렇게 생각하면 평범한 동네 카페가 주는 편안함의 가치는 갈수록 더 소중하다. 언제든 편하게 들러서 차 한 잔 즐길 수 있는 카페가 동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나 역시 옛날에는 분위기를 퍽이나 찾았다. 멋과는 거리가 먼 동네 카페를 찾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대림동에서 머문 한 달 동안 자주 찾던 그 편안한 카페 덕분에 동네 카페의 맛을 알아 버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동네 카페를 자주 가면 동네 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좋지 아니한가.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전 서울대 교수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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