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주 고려대 특임교수, 전 駐폴란드 대사

미국의 새 국방전략(NDS)은 한국에 북한 억제의 일차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미동맹의 기축인 핵우산 제공에 대해서는 명시적 언급 없이 ‘중요하나 제한적인 지원’이란 애매한 표현에 그쳤다. 한미동맹의 재설정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전격적인 25% 관세 부과에서 보듯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동맹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거래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줄 것은 주되 받을 것은 받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이에 따라, 우리는 대미 투자 약속을 이행하는 대신에, 지난해 11월의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설명자료(fact sheet)에도 포함된 원자력추진잠수함(SSN·원잠)과 농축 재처리 등 현안 협상에서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 원잠의 경우 군사적 목적으로 쓰이는 핵연료에 대해서는 미국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사전 협의가 필수이므로, 오커스(AUKUS)의 호주 핵잠 사업 동향을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확산저항적인 20% 미만 ‘고농도저농축우라늄’(HALEU)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미국과 별도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그리고 농축 재처리의 경우 우리가 일본처럼 단시일 내에 포괄적 동의를 확보하기 어렵더라도,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범위에서 가능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와 관련, 미국 정부 내의 비확산 세력이 여전히 한국에 대해 품고 있는 의구심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동시에, 협상은 미국이 오는 11월 중간선거 분위기로 진입하기 전에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것이 좋다.

한편,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핵군축, 핵비확산과 함께 핵확산금지조약(NPT)의 3대 축을 구성하는데, 원전정책의 근간은 일관성 유지와 국민적 공감대 구축이다. 화석연료인 석탄과 원유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이 아니며, 태양열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는 우리 여건에 비춰 에너지 믹스의 중추가 될 수 없다. 원전의 경우, 자동 가동 정지와 냉각계통 유지 등 다중방어 시스템 및 사용후핵연료 등 폐기물 관리 기술의 진보에 따라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

미국과 영국·프랑스 등 대다수 유럽 국가, 중국·러시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포함해 원전을 운영·건설·계획 중인 국가는 60여 개나 돼 세계는 ‘원전 르네상스’(nuclear renaissance)를 맞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도 원전 재가동에 나서고, 트럼프 대통령은 2050년까지 원전 발전용량을 현재의 4배로 늘리기 위해 신규 원전 건설 절차를 간소화한다.

다행히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원전의 신규 건설에 대해 전향적인 검토 의사를 밝혔다. 관련 기업과 전문인력이 주요 구성 요소인 원전 생태계는 정부의 정책 추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 역량을 갖춘 우리 기업들이 수출을 통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성원해야 한다. 더는 ‘탈(脫)원전주의자’들에게 휘둘리며 갈팡질팡해선 안 된다.

미국과 원잠 및 농축 재처리 협상 때에는, 우리의 확고한 핵비확산 의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면서 신뢰를 얻어야 한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우리나라의 평화적이고 지속가능한 원자력 이용을 담보하기 위한 핵심 요소다. 심해지는 기후변화와 본격적인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탄소중립 실현과 ‘에너지 안보 확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면 오락가락 하지 않는 원전 정책의 시행이 필수이다.

최성주 고려대 특임교수, 전 駐폴란드 대사
최성주 고려대 특임교수, 전 駐폴란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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