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채 사회부 차장

소설가 장강명은 바둑계 인사 30여 명을 인터뷰한 뒤 지난해 ‘먼저 온 미래’ 책을 펴냈다. 세계 최고 바둑기사였던 이세돌이 2016년 3월 인공지능(AI) 알파고에 패배한 이후 벌어진 바둑계의 변화를 생생히 기록했다. 그는 책 소개를 통해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다. 2026년 2월 현재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직업군 중 하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최근 3만 명을 해고하기로 했다. 한국 개발자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중견 개발자는 “신입을 받아서 가르치는 것보다 AI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하는 게 효율도 좋고 편하다”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개발자는 고액 연봉을 보장하는 최고의 유망 직종이었다.

한국에서 최고의 전문직 중 하나로 통했던 공인회계사(CPA)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공인회계사 합격자 1200명 중 실무 수습기관에 등록하지 못한 인원이 8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은 궐기대회까지 열었다. 경기 침체로 인한 영향도 있지만, AI의 침투가 더 본질적인 요인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개발자와 공인회계사처럼 모든 직종은 언젠가 AI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우대받는 의사도 그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이 3년 안에 최고의 외과 의사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세돌이 알파고에 쉽게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압도적 다수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외과는 모르겠지만, 내과나 영상의학과 등은 AI 의사가 더 나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알파고 쇼크’ 이후 10년이 지났다. AI가 바꿀 미래는 점점 현실화하고 있고, 영향을 받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가장 먼저 AI의 습격을 받은 바둑계를 보면 미래를 대비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바둑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인간의 삶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승부는 인간에게 희열의 감정을 주고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장강명은 계속 바둑을 두는 이유를 ‘서사’와 ‘스토리’로 요약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자격증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한평생이 보장되는 사회는 막바지에 와 있다. 무엇을 배우고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앞서가는 사람들은 사유의 힘을 강조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AI 수업에서는 요즘 기계어가 아니고 인간의 언어만 오간다고 한다.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코딩할 것인지 가르치는 것이다. AI와 공존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이다.

한국에서도 인지 능력이 아니라 비인지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여전히 AI 사용을 막고, 학생 고유의 인지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곳도 있다. 무엇을 가르치고 평가할지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김병채 사회부 차장
김병채 사회부 차장
김병채 기자
김병채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