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선거연령을 16세로 낮추자는 제안이 느닷없이 등장했다. 국회 제1야당인 국민의힘 대표의 발언이다. 사회적 논의나 공론화 과정은 생략된 채 숫자만 제시했다. 고등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말은 언뜻 진보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 의도를 생각해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굳이 선의로 해석해 보자. 계엄과 탄핵, 극단적 대립으로 꽉 막힌 정치 현실에 돌파구가 없으니 ‘차라리 고등학생들 표(票)를 추가하면 낫지 않겠나’ 하는 근거 없는 계산을 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먼저 필요한 것은 선거연령 조정이 아니라, 기성 정치에 대한 깊은 반성과 책임 있는 퇴장일 것이다.
이 논의는 민주정치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지만, 꽃이 핀다고 열매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의 교과서로 불리던 미국조차 선거 이후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하게 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 튀르키예, 헝가리, 브라질, 중국 역시 선거는 있지만 그 결과가 늘 유능한 지도자 선출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결국, 문제는 선거의 존재가 아니라, 선택하는 유권자의 준비도이다.
민주주의의 질(質)은 유권자의 질에 달렸다. 왕정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막 싹틔우던 프랑스혁명 당시 투표권을 25세 이상 남성으로 제한했던 배경도, 민주주의를 가볍게 봐서가 아니었다. 그 무게를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다수 국가가 18세에 선거권을 부여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부모로부터 일정 부분 독립해 사회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시점이라는 최소 기준이다. 오스트리아나 독일 일부 지역에서 16세 선거권을 허용한 사례가 있지만, 이들 국가는 초·중등 교육 단계부터 비당파적 정치교육이 일상화한 사회다. 1976년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다양한 정치적 입장에 대한 이해와 토론 문화를 초중고 교실 안에 정착시켰고, 그것이 오랜 사회적 자산으로 축적돼 왔다.
한국의 교실 풍경은 다르다. 어린 나이부터 입시 전쟁을 시작해, 고등학생의 하루는 학원과 문제집으로 채워진다. 사회탐구에서 정치와 민주주의를 배우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시험을 위한 암기다. 국제시민교육연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시민 지식수준은 세계 4위이다. 그러나 타인과 사회에 대한 신뢰도는 유럽 젊은이는 70%인데 비해 한국은 30%에 불과하다. 머릿속에 암기된 사회탐구 지식은 가득 찼지만, 실생활에 필요한 사회성은 메마른 셈이다.
이런 교실에 투표권이 들어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선거철마다 교실은 정치의 연장선이 되고, 교사는 어떻게 할지 난감할 것이며, 많은 경우 정치적 중립에 대한 비난의 중심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부부, 부모자식끼리도 정치 이야기를 피하는 양극화 시대에 학교가 정치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차라리 지금 필요한 것은, 고등학생보다는 대학생과 청년세대가 사회 전체를 고민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키우는 일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절대 용인하지 못하고 분노까지 퍼붓는 정치 신뢰 적자를 흑자로 돌리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다. 민주주의는 선거연령을 낮춘다고 보장되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참여는 확대 아닌 고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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