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권 산업부 차장

대한민국은 ‘피지컬 인공지능(AI)’ 패권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AI가 로봇으로서 산업 현장에 투입되는 변곡점이다. 산업을 넘어 인류의 삶을 통째로 변화시킬 만큼 거대한 흐름에 직면해 있다. 현대차 노조가 아틀라스 로봇 도입에 반대하고, AI의 실존적 위험에 대한 ‘몰트북’식 우려가 교차하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기술의 진보 속도를 사회 시스템이 수용할 수 있게 만드는 ‘정교한 소통’과 ‘합리적 공론장’이다.

하지만 최근 최고 권력자의 소통 방식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대통령이 직접 SNS를 통해 부동산 보도를 질타하고, 상속세 자료를 낸 경제단체에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서슴지 않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최고 권력자의 날 선 메시지는 시장과 전문가 집단을 향한 ‘좌표 찍기’로 변질돼, 우리 사회의 건강한 비판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메시지가 정제되지 않은 채 시장에 직접 투사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비극은 ‘전문가의 침묵’이다. 데이터와 논리를 바탕으로 정책 사각지대를 경고해야 할 연구원들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자기 검열’에 빠진다. 대통령이 가짜뉴스로 규정한 의제에 누가 소신 분석을 내놓을 수 있을까. 결국, 권력의 입맛에 맞는 목소리만 복제되는 ‘침묵의 나선’이 공론장을 지배할 수 있다.

경제단체의 위축은 더 심각한 문제다. 대한상공회의소와 같은 단체는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 필수 창구다. 대한상의가 인용한 데이터의 엄밀함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한국의 상속세 세수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4배에 달한다는 점은 흔들리지 않는 팩트다. 통계의 미흡함을 꾸짖는 권력의 칼날이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부담’이라는 본질적 의제까지 도려내서는 안 된다. 오류가 있다면 팩트로 바로잡으면 될 일이다. 이를 “고의적 가짜뉴스”로 몰아세운 뒤 감사와 엄중한 책임 등을 예고하며 공개 저격하는 방식은 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건설적 비판을 내놓지 못하게 만드는 ‘함구령’과 다름없다.

이러한 공론장의 실종은 결국 정책의 ‘피드백 루프’를 파괴한다. 비판이 차단된 정책은 오류 수정의 기회를 잃고, 그 부작용은 시장에 고스란히 전이된다. 피지컬 AI 혁명 시대, 노동자와 기업, 정부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에 권력의 언어가 공론장을 두들겨 깨는 ‘망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망치는 멀쩡한 뼈와 살까지 으깨버린다. 권력의 언어는 시장의 종기를 도려내는 ‘메스’여야 한다. 물론 경제단체와 전문가들 역시 비판은 자유롭되 근거는 엄격해야 한다. 권력 기관도 대응은 단호하되 언어는 절제돼야 한다. 민간 피드백 없는 권력 수사만이 시장을 지배하면, 시장의 혁신과 발전은 나올 수 없다.

기술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는 국가의 조건은 단순히 로봇의 성능이 아니라, 그 기술을 둘러싼 갈등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조율하느냐에 달려 있다. 권력은 시장을 윽박지르는 언어 대신, 전문가와 시장이 마음껏 비판하고 대안을 낼 수 있는 ‘자유로운 토양’을 복원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용권 산업부 차장
이용권 산업부 차장
이용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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