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오늘날 ‘이판사판’이라는 말은 대개 막다른 골목에 몰려 더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뜻한다. 물러설 곳도, 선택지도 없는 상태를 가리킬 때 이보다 직관적인 표현도 드물다. 그래서 이 말에는 체념이나 자포자기, 혹은 마지막 발악에 가까운 뉘앙스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이 표현은 본래의 의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판사판’은 불교 용어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은 불교 교리를 탐구하고 공동체를 운영하는 두 가지 판단 방식이자 수행자의 역할을 의미한다. ‘이판’은 경전을 공부하고 참선 수행에 전념하는 ‘이판승(理判僧)’을, ‘사판’은 사찰의 재정 관리와 행정, 대외 업무 등 실무를 담당하는 ‘사판승(事判僧)’을 뜻했다. 이판이 있어야 가르침의 계승이 이뤄지고, 사판이 있어야 사찰 공동체가 유지된다. 두 역할은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사찰을 지탱하는 두 축으로서의 분업 구조였다.
따라서 본래의 ‘이판사판’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궁지의 상황을 뜻하지 않았다. 본래 의미에 가까운 해석은 이론과 현실, 원리와 사례라는 서로 다른 판단 방식이 모두 필요하며, 상황에 따라 이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선 시대 억불숭유 정책 아래에서 승려가 된다는 것은 신분상 최하층인 천민으로 전락함을 의미했다. 이판승이든 사판승이든, 일단 승려가 되면 다시는 세속으로 돌아갈 수 없는 막막한 처지가 됐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판이든 사판이든 결국 끝장’이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투영됐다. 결국 오늘날 ‘어찌할 도리가 없는 궁지’를 상징하는 말로 굳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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