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카니발 ‘그땐 그랬지’

요즘 TV엔 ‘스페셜’이 많다. 뭐가 특별한가 살펴보니 대부분 재방송이다. 재고를 특산품이라 써 붙여 방출한 셈이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제작비는 오르고 광고는 줄어드니 고육지책이죠. 선배들은 이런 걱정 없으셨죠.” 시비지심이 측은지심으로 바뀐다. “뭐 그땐 그랬지.”

옛날 생각나면 늦은 거고 옛날얘기 하면 늙은 거다. 다행히 음악동네는 온고지신이다. 사람은 늙어도 노래는 늙지 않는다. ‘이제는 고생 끝 행복이다. 내 세상이 왔다.’ vs ‘세상이 무너진다. 모두 끝난 거다.’ 어긋난 두 가지 인생을 한 폭 병풍에 담은 이 노래 ‘그땐 그랬지’(1997). 화선지에 붓글씨로 써두고 다짐한다. 늙었다는 얘긴 들어도 낡았다는 소린 듣지 말자.

가요무대에 걸만한 제목 같아도 사실은 전도유망한 음악천재들(이적·김동률)이 의기투합해 만든 노래다. 시작부터 ‘참 어렸었지 뭘 몰랐었지’ 넋두리인데 계속 듣다 보니 점입가경이다. ‘참 느렸었지. 늘 지루했지’ ‘참 세상이란 만만치 않더군. 사는 건 하루하루가 전쟁이더군’ 창작자가 당시 몇 살이었나 살펴보니 두 사람 모두 23세(1974년생) 동갑이었다. 하지만 그 한 장의 앨범이 시작이고 끝이었다. 20세기 마지막 판타스틱 듀오 ‘카니발’. 지금도 그 이름에선 매캐한 화약 냄새가 난다. 그리고 불꽃은 풀꽃으로 성장했다.

10년 전(2016) ‘개그콘서트’엔 ‘불상사’라는 코너가 있었다. 꼰대 혹은 진상이라 불리는 상사와 엉뚱한 신입사원 사이에 빚어지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보면서 저마다 ‘그때 그 사람들’을 떠올린 시청자가 많았을 거다. 예능국 사무실에도 비슷한 불상사(不祥事)가 있었다.

‘이번 설 특집 기획안 금요일까지 제출 요망’ 그땐 그랬다. 기한에 맞춰 신입사원이 써낸 제목은 ‘카니발’ 부제는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다. 헤어져 살던 가족이 선물 들고 모이는 명절 분위기에 맞춘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한때는 절친이었으나 지금은 사이가 멀어져(틀어져) 도저히 한 화면에 잡기 힘든 유명인 두 사람이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며 화해한다는 게 주제다.

섭외 명단에는 한 번도 함께 출연한 적 없는 라이벌,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정치인, 심지어 이혼한 부부도 포함됐다. 기획 의도는 그럴듯했다. 이중창(二重窓)을 쌓은 사람들이 이중창(二重唱)을 한다. “만약 ‘예능 평화상’이라는 게 있다면 후보에 올릴 만한 아이디어죠.” 부장이 묻는다. “섭외할 자신 있어?” 난관에 봉착하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아무말 대잔치’가 시작된다. “스페셜 동물농장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이런 건 어떨까요? 고양이 30마리를 스튜디오에 풀어놓고 연예인이 편을 갈라서 제한된 시간에 누가 방울을 많이 다는지 겨루는 일종의 신춘 명랑운동회죠.” 부장이 노려본다. “고양이 괴롭힐 일 있어? 동물 학대라고 항의하면 자네가 책임질 거야?”

다혈질 부장은 현장을 떠났고 철부지 신입은 부장이 됐다. 신입사원에게 차마 말은 못 꺼내고 속으로 말한다. “너 같은 사람이 어떻게 들어왔지?” (상대방도 속으로) “부장님 같은 분 때문에 세상이 이 모양 이 꼴 된 거 아닌가요?” 그 두 사람이 노래방에서 ‘그땐 그랬지’를 열창하는 상상을 해본다. 구획은 정해졌다. (선배) ‘참 옛말이란 틀린 게 없더군. 시간이 지나가면 다 잊어지더군’ (후배) ‘참 세상이란 정답이 없더군. 사는 건 하루하루가 연습이더군’

제68회 그래미상 오프닝에서 로제와 함께 ‘아파트’를 부른 브루노 마스는 레이디 가가와도 이중창을 한 적이 있다. 죽음과 웃음이 결합한 철학적인 노래다. ‘미소 지으며 죽자’(Die with a Smile) 생의 목표가 이 제목 같으면 소리 지를 일도 줄어들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모양 이 꼴로 살면 이 모양 이 꼴로 죽는다.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2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