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문10답 - 전격 공개 ‘엡스타인 문건’

 

엡스타인, 정·재계와 교류

소녀들 유인 성매매 강요

사진 18만·동영상 2000개

클린턴·빌게이츠까지 등장

 

트럼프 ‘문건 투명법’ 서명

연루 의혹 정면돌파 선택

 

英앤드루 前왕자 연루 의혹

찰스 국왕 “경찰 조사 지원”

 

문건 공개로 2차 가해 논란

사이트 일시폐쇄 등 요구도

제프리 엡스타인(가운데) 문건에 등장하는 정·재계 인사들의 모습. 메테-마리트 노르웨이 왕세자비(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앤드루 전 영국 왕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로이터 AP AFP 연합뉴스, 그래픽 = 전승훈 기자
제프리 엡스타인(가운데) 문건에 등장하는 정·재계 인사들의 모습. 메테-마리트 노르웨이 왕세자비(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앤드루 전 영국 왕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로이터 AP AFP 연합뉴스, 그래픽 = 전승훈 기자

미국 억만장자 금융인 제프리 엡스타인의 성범죄 네트워크를 담은 ‘엡스타인 문건’이 전격 공개되며 전 세계 정·재계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정치적 공세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 문건 공개라는 승부수를 던졌고, 최근 미국 법무부는 ‘엡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에 따라 약 350만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수사 기록과 시각 자료를 공개했다. 문건에는 전·현직 미 대통령부터 유럽 왕실, 글로벌 기업가 등 150여 명의 실명이 담겨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번 문건 공개가 권력층을 향한 사법 처단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 제프리 엡스타인은 누구

사립학교 교사였던 엡스타인은 투자은행 업계로 이직해 헤지펀드 매니저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이후 10억 달러(약 1조4655억 원) 이상 초고액 자산가 대상 투자회사를 설립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뉴욕 맨해튼, 프랑스 파리 등에 대저택, 버진아일랜드의 섬 등을 소유해 폐쇄적이고 호화로운 사교계 활동을 했다. 전·현직 미 대통령, 유럽 왕족 등 정·재계를 망라한 최상류층 인맥을 쌓았다.

하지만 2005년 그가 수십 명의 미성년 소녀들을 자신의 저택으로 유인해 성범죄를 저지르고,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강요하는 등 조직적인 인신매매 네트워크를 운영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2008년 플로리다에서 성범죄 혐의로 처음 기소됐지만 13개월의 금고형만 받았다. 이후 2019년 8월 미성년자 성 착취 혐의로 다시 체포돼 재판을 기다리던 중 뉴욕 맨해튼 교도소에서 자살한 채 발견됐다.

2. 엡스타인 문건이란

엡스타인이 자신의 사업을 위해 유력 인사들과 미성년자의 불법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수사 기록들이다. 엡스타인의 피해자 중 한 명인 버지니아 주프레가 엡스타인의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 과정에서 작성됐다.

미국 뉴욕 남부 연방법원 등 재판부는 그간 익명 처리됐던 명단 봉인 해제를 명령해 2024년 1월 수천 페이지가 공개됐다. 전·현직 미 대통령, 왕실 인사, 유명 과학자 및 기업인 등 150여 명의 이름이 공개됐다. 피해자들과 주변 인물들이 법정이나 변호인단 앞에서의 진술 내용, 엡스타인의 개인 전용기인 ‘로리타 익스프레스’를 탔던 명단과 날짜, 엡스타인과 조력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 및 서신 등도 포함됐다.

3. 엡스타인 문건 전체가 공개 안 됐던 이유는

2008년 엡스타인이 처음 처벌받을 당시, 검찰과 ‘비공개 합의’를 맺은 탓에 문건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특히 문건이 그간 봉인됐던 이유는 법적 보호 및 사생활 문제가 가장 컸다. 성범죄 피해자들의 이름, 의료 기록, 신체 사진 등 지극히 민감한 정보가 포함돼 있어 미 법무부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피해자 신원, 의료 기록, 추가 기소 가능성 등을 근거로 문서 공개를 제한해왔다.

하지만 이를 두고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영국 왕실, 재계 인사 등 주요 권력층 거물들이 연루되어 있어, 이들이 자신들의 평판을 지키기 위해 공개를 지연시키려 한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4. 트럼프 대통령 공개 결정 배경은

문건 공개는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달 의회에서 만장일치에 가까운 초당적 합의로 통과된 ‘엡스타인 문건 투명성 법’에 서명하면서 성사됐다. 이는 엡스타인 문건 미공개에 딥스테이트 음모론(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비공식 세력)을 펼쳐왔던 트럼프 대통령이 정작 문건 공개를 미루자 자신이 연루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는 이 문제를 놓고 분열할 위기를 보였고 또 공화당 내 친(親)트럼프 의원들도 공개를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지지층과 당 분열을 막기 위해 문건 공개에 동의했다.

5. 공개된 문건의 양은

미 법무부가 현재까지 단계적으로 공개한 엡스타인 문건의 양은 약 350만 페이지에 달한다. 이와 함께 지난 1월 18만 장의 사진과 2000개의 영상도 추가 공개됐다. 엡스타인 문건 투명성 법 통과를 주도한 로 칸나 민주당 하원의원에 따르면 법무부가 현재 확보하고 있는 엡스타인 문건은 지금까지 공개된 것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총 600만 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프리 엡스타인의 옛 연인이자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이 지난 2020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 감옥에 수감된 모습. 맥스웰은 9일 연방 의회 증언을 거부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향후 증언 대가로 사면을 요구했다.  미 법무부 제공 AFP 연합뉴스
제프리 엡스타인의 옛 연인이자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이 지난 2020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 감옥에 수감된 모습. 맥스웰은 9일 연방 의회 증언을 거부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향후 증언 대가로 사면을 요구했다. 미 법무부 제공 AFP 연합뉴스

6. 공개된 문건의 내용은

공개된 문건에는 엡스타인과 교류했던 정·재계 인사, 연예인, 학자들의 실명이 거론된 이메일 및 문자 메시지가 대거 포함돼 있다. 일부 인사들의 경우 엡스타인 섬에 초대된 정황 등도 발견됐다. 또 엡스타인이 생전 소유하던 저택과 섬 내부 사진과 함께 피해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사진 및 영상도 함께 공개됐다.

문건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1000회 넘게 등장하는 등 수많은 각계 거물들이 여러 차례 거론됐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정치권 인사들의 흔적이 대거 발견됐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재계 인사들의 이름도 문건에서 등장했다. 앤드루 전 영국 왕자가 피해 여성 위에 엎드린 사진이 공개돼 영국에서 파문이 일기도 했다.

7. 트럼프 대통령 연루 증거는

공개된 엡스타인 문건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과 교류 관계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정황이 다수 포함됐다. 문건 곳곳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일부 기록은 지난해 12월 공개됐다가 삭제된 뒤 다시 복원되기도 했다. 해당 자료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교 활동과 관련한 부정적 묘사도 담겨 있어, 법무부가 현직 대통령에게 불리한 자료를 의도적으로 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다만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의 미성년 성범죄에 직접 가담했음을 입증할 물증이나 결정적 진술은 확인되지 않았다.

8. 연루 의혹자들 해명은

엡스타인 문건 추가 공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클린턴 전 대통령, 빌 게이츠 MS 창업자, 머스크 테슬라 CEO 등 거물급 인사들은 잇따라 연루 의혹을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엡스타인 문건 공개 법안에 서명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숨길 것이 있다면 공개를 지시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게이츠 측은 엡스타인이 작성한 이메일에 포함된 사생활 관련 주장을 “완전히 사실무근인 명예훼손”이라고 반박하며, 관계 단절 이후 엡스타인이 악의적으로 내용을 꾸며냈다고 주장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 측도 엡스타인의 성범죄를 알지 못했으며, 2008년 첫 기소 이후 모든 관계를 끊었다고 해명했다. 머스크 CEO는 엡스타인의 섬 초대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교류는 없었다고 밝혔다.

9. 유럽 왕실과 정치권도 휩싸였는데

추가 문건 공개는 유럽 권력층을 정면으로 타격하고 있다. 찰스 3세 국왕은 9일 동생인 앤드루 전 왕자에 대한 경찰 수사와 관련한 성명에서 “우리에게 요청한다면 그들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수사 협조 의사를 밝혔다. 앤드루 전 왕자는 엡스타인과 친분을 유지하며 주프레가 미성년일 때부터 수차례 강제로 성관계한 의혹으로 왕자 칭호와 모든 훈작을 박탈당했고 이번 문건에서 추가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피터 맨덜슨 전 영국 산업장관은 엡스타인으로부터 거액을 송금받고 정부 기밀을 유출한 의혹이 드러나 노동당을 자진 탈당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맨덜슨의 전력을 인지하고도 주미대사로 임명한 것에 대해 사과했으나, 총동원된 야권의 사퇴 압박에 직면해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문건에서 1000번 넘게 언급된 메테-마리트 왕세자비가 엡스타인과의 친분과 관련해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또 엡스타인과 연루 의혹을 받는 토르비에른 야글란 전 총리와 모나 율 전 주요르단·이라크 대사는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10. 피해자들의 상황과 요구사항은

엡스타인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한 문건 공개가 오히려 피해자들에게는 ‘가혹한 2차 가해’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 법무부는 최근 자료를 공개하며 마리아 파머·애니 파머 자매를 포함한 피해자 43명의 실명과 주소, 심지어 민감한 신체 사진 등을 삭제 없이 노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에 피해자들은 “우리는 또다시 발가벗겨져 조롱당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를 유린한 가해자들은 익명 뒤에 숨어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다”며 비판했다. 변호인단은 즉각 문서 공개 사이트의 일시 폐쇄와 특별 조사관 임명을 요구하는 긴급 청원을 법원에 제출했다.

지난해 4월 사망한 주프레 역시 가해자들의 거짓 해명과 2차 가해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 1월 30일 추가 문건이 공개되면서 ‘10대 시절 앤드루 왕자에게 성폭행당했다’던 그녀의 주장이 문서로 뒷받침됐고, 유족은 “그녀가 평생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았으나, 이제야 완전히 명예가 회복되었다”고 말했다.

이종혜 기자, 박상훈 기자, 정지연 기자, 김유정 기자
이종혜
박상훈
정지연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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