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필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 교수

힘의 질서를 향한 일본 정치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안보 질서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2·8 중의원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과 연립여당 일본유신회 의석이 개헌 발의선인 3분의 2 확보로 평화헌법 개정이 현실적 선택지로 부상했다. 이는 일본 내부의 정치 변화에 그치지 않고, 미국·중국·대만·한국이 얽힌 동아시아 전략 질서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것이다.

전후 일본의 정체성은 헌법 제9조가 규정해 왔다. 전쟁 포기와 전력(戰力) 보유 금지는 일본을 ‘평화국가’로 만든 핵심 기둥이다. 그러나 냉전 이후 일본은 ‘해석 개헌’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자위대 창설, 해외 파병, 집단적 자위권 행사까지 점차 안보 역할을 확대해 왔다. 다카이치 정권은 이 흐름을 제도화해, 일본을 ‘전쟁할 수 없는 나라’에서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바꾸려고 한다.

이 움직임의 구조적 배경에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있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부담 증가는 동맹국의 역할 확대를 요구한다. 인도·태평양 전략 속에서 미국은 일본을 단순한 지원 파트너가 아닌, 중국 견제의 핵심축으로 위치시켰다. 일본의 군사적 자율성 확대는 미군의 부담을 덜고, 대만해협과 서태평양에서 억지력을 보강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다카이치 정권의 ‘보통국가화’(전쟁국가화) 구상은 이러한 미국의 전략적 필요와 맞닿아 있다.

반면, 중국은 이를 명백한 위협으로 인식한다.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전후 군국주의의 복원으로 읽히며, 대만 문제와 직결돼 해석된다. 일본이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언급할수록 중국의 경계심은 커진다. 방어적 조치가 상대에게 공격 의도로 인식되는 ‘안보 딜레마’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대만은 이 경쟁의 교차점이다. 일본에 대만은 가치 연대의 대상이자 해상 교통로를 지키는 전략 요충지다. 반격능력과 장거리 타격 수단을 확보하려는 일본의 정책은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높인다. 이는 억지력 강화라는 명분과 동시에, 일본이 분쟁의 직접 당사자가 될 위험도 내포한다.

한국의 입지는 더욱 복잡하다. 일본의 전쟁국가화는 한미일 안보 협력의 실효성을 높여 북한 억제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개입 범위·역할·정당성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 역사 인식과 결합되면 국내 정치적 반발을 자극해 협력의 지속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오늘의 쟁점은 개헌 여부가 아니다. 국민투표가 불발되더라도 일본의 방위비 증액, 반격능력 확보, 작전범위 확대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전쟁국가화는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다.

지각변동 속에 한국의 선택이 중요해졌다. 첫째,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전제로 한 조건부 협력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한미동맹을 축으로 하되, 일본과의 협력 범위와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셋째, 중국의 압박에 대비해 안보와 경제를 분리 관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다카이치 정권의 압승은 전후 체제의 종언을 예고한다. 규범과 자제의 시대가 저물고, 힘과 억지의 시대가 돌아오고 있다. 동아시아의 안보 지층이 흔들리는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과거와 같은 우려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이다. 반응하는 국가가 아니라, 설계하는 국가만이 이 변화를 관리할 수 있다.

장재필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 교수
장재필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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