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안 인터뷰 - 윤종빈 한국정치학회장
‘표결 민주주의’ 함정에 빠지면 협치 완전히 망가져
권력 분산위해 개헌…‘4년 중임제’ ‘결선투표제’ 도입 필요
‘선출 권력이 우선한다’는 인식 위험… 삼권분립 훼손돼
대통령 재의요구권 제한·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추진을
지선때 개헌 국민투표? 시간 부족… 선거제도 먼저 손봐야
부동산 메시지 쏟아내는 李, 자칫하면 레임덕 이어질수도
인터뷰 = 윤정아 정치부 차장
“‘표결 민주주의’라는 함정에 빠지면 안 됩니다. 다수제(majoritarian democracy)라는 힘의 논리로 국회가 운영되면 협치가 망가지기 쉽습니다. 협의제(consensus democracy) 정치 구조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해 12월 제55대 한국정치학회장에 취임한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는 하나의 정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단점 정부(unified government)’ 형태”라며 “단점 정부는 효율적이지만, 집권당이 ‘독주하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져들게 한다”고 설명했다. 170여 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입법 독주’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에 동의하며 “협의가 안 되면 다수결로 하면 된다는 논리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권력 분산과 협치가 가능한 권력구조로 가기 위해 개헌이 꼭 필요하다고도 했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서대문구 명지대 교정에서 진행됐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1년을 넘겼지만, 극단·대결 정치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정치권이 여전히 양보와 타협이 없는, 양극화된 갈등 구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많이 회복되었지만, 아직도 내란 종식이 가장 큰 화두다. 비상계엄 정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집권 여당이 된 민주당의 ‘입법독주’에 대한 비판도 크다.
“거대 여당의 독주는 3대(내란·김건희·채상병) 특검법, 방송 3법 등 쟁점법안의 강행 처리에서 잘 나타났다. 여당의 입법 독주는 야당의 협치의 부재를 초래하게 된다. 특히 대통령과 국회를 민주당이 차지한 단점 정부에서는 삼권 분립이란 균형이 깨지기 쉽다.”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이 “선출 권력이 임명 권력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하고, 여당이 강하게 사법부를 압박하면서 삼권 분립 논쟁이 붙었었다. 민주당 주장대로 한국의 사법부 권한이 과도한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선출 권력이 우선한다는 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단점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권력이 더 강해져 삼권 분립이 훼손되는 경우가 있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범위 제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단점 정부 형태가 처음은 아닐 텐데, 왜 여당의 독주가 쉬워진 건가.
“범여권 의석수가 180여 석에 달한다. 지난 단점 정부를 보면, 150석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소수의 이탈표 때문에 여당이 원하는 표결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쉽게 뭐든지 할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이다. 힘의 논리로 하다 보면 협치는 완전히 망가진다. 다수제가 아닌 협의제 정치구조로 가야 한다.”
―협의제 정치구조를 구현하는 방법은.
“핵심은 권력 분산이다. 분권과 협치가 작동하는 권력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현재의 승자독식 이분법적 양당제 구조에서는 권력과 책임을 분산하는 온건 다당제로의 개선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정·부통령제의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정당 간의 선거연합·통치연합을 도모하는 게 협의제 정치구조를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추진하자는 요구가 있다. 많은 대통령이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인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임기 중 흐지부지됐다. 이번에 가능할까.
“지방선거에 국민투표를 추진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해 보인다. 가장 쉽게 합의할 수 있는 헌법전문 개정이라도 합의한다면 개헌을 향한 실질적인 걸음이 될 것인데 이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외국인·18세 유권자·선상투표를 허용하는 국민투표법 개정도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다른 방법은 없나.
“선거 제도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개헌은 국민투표가 필요하지만, 선거 제도를 바꾸는 것은 국회에서 법 개정으로 가능하다. 예를 들어 결선투표제 도입이다. 한국에서는 50%를 얻지 못해도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다. 그런데 결선 투표를 하는 프랑스의 경우 1위가 50%를 넘지 못하면 1, 2위를 놓고 2차 투표를 한다. 1차에서 떨어진 여러 정당 후보가 연합을 하게 되고, 연합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자연스럽게 내각을 구성할 때 지분이 생긴다. 좋든 싫든, 이념적으로 맞든 안 맞든 나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야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 이 역시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한 번에 완벽하게 이뤄지는 변화는 없다.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현재 유권자들은 국회의원 총선거 때 1인 2표를 행사한다. 지역구 의원에 한 표, 정당에 한 표를 행사한다. 이 제도가 2004년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20년밖에 안 된 제도다. 이전에는 지역구 표를 계산해 비례대표 의석을 나눠 가졌다.”
―과거엔 선거 때마다 야당이 경쟁적으로 정치 개혁안을 내놨는데, 이런 모습마저 실종됐다.
“지금은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개혁 경쟁’도 박빙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지금은 개혁 경쟁이 필요 없을 정도로 국민의힘은 망가져 있고,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높은 수준에서 순항하고 있다.”
―6·3 지방선거 결과는 어떻게 내다보고 있나.
“이 대통령 임기 1년 차에 치러지는 ‘허니문 선거’다. 이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이 반영된 ‘대통령 후광효과’가 작동할 것으로 본다. 국민의힘은 아직도 비상계엄·윤 전 대통령 탄핵 문제와 절연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포기한 게 아닌가 싶다. 오히려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하는 등 당권 갈등에만 몰두하고 있다. 민주당이 상당히 유리한 구조다.”
―한국갤럽 기준 이 대통령 지지율이 6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TK(대구·경북) 지역, 60대 이상 등 보수층 내에서도 긍정평가가 높다. 임기 초반이지만 평가를 한다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공적 개최, 외교 정상화, 트럼프발 관세 협상 타결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 성과가 있었다. ‘코스피 5000’ 공약도 실현됐다. 최근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등 부동산 분야에서도 SNS를 통해 직접 목소리를 내며 국정 운영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SNS를 통한 직접 소통 방식은 양면이 있다고 본다. 대통령의 의중을 명확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담당 부처가 대통령 뒤에 숨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부동산 메시지는 양날의 칼이다. 부동산 정책이 실패할 경우 모든 책임이 대통령에게 쏠린다. ‘부동산을 못 잡으면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승부수겠지만 자칫하면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다.”
―SNS 정치는 ‘뉴노멀’로 보인다. 국회의원보다 정치 유튜버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다. 선출되지 않은 이들이 오히려 제도권 정치를 쥐고 흔든다는 우려도 있다.
“민주주의 발전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정치 유튜버들은 상대 정당에 대한 혐오를 통해 지지자를 결집시킨다. 정치 극단화, 양극화를 부추기는 것이다. 특히 정당의 지도자가 강성 유튜버에게 휘둘리면 당원들의 혐오감을 자극하고, 중도층은 이탈한다. 또 그들은 공적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최근 ‘대의원·권리당원 1인 1표제’를 도입해 당원의 권한을 확대시켰다. 국민의힘도 당내 선거에서 ‘당심(黨心)’ 반영 비율을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당원 중심의 정당 개혁은 정당정치 활성화와 정당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단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당원을 제대로 양성해야 한다. ‘팬덤정치’를 위한 동원의 수단으로서 당원중심주의가 돼서는 안 된다. 당원들이 특정 지역에 쏠릴 경우 ‘도로 지역정당’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종교단체의 조직적 당원 개입 등 부작용도 대비해야 한다.”
윤정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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