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상담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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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고민

오랜 칩거 생활로 사회생활을 거의 해 보지 않은 상태입니다. 최근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졌고, 그동안 저를 돌봐 주던 부모님도 노쇠해져 더는 도와주기 힘들다고 하십니다. 이 이야기를 제가 오랫동안 다니던 정신과 의사에게 했더니 “나가서 일하고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에 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섭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계속 나가야 한다고만 하니 이 사람이 정말 저를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 방법이 유일하게 올바른 방법이기 때문일까요?

A : 자기 두려움 솔직하게 밝히고 대화하는게 치료 첫 걸음

▶▶ 솔루션

질문자님께서는 지금 두 가지 커다란 벽 앞에 서 계신 듯합니다. 하나는 나를 지켜 주던 울타리가 사라져 가는 현실적인 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가의 조언이 나의 공포를 무시하고 있다는 부당함과 서운함입니다. 이러한 치료자의 현실적 조언이 부당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종종 환자분들이 치료를 그만두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정신과 의사가 나가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대체로 틀리지 않습니다. 인간의 뇌는 지속적으로 다른 인간과 정서를 교류하고, 어느 정도의 갈등 상황에 놓여 있어야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오랜 고립 상태에 있을수록 불안이 줄어들지 않고 세상에 대한 공포가 더 굳어집니다.

현실적으로도 인간은 성인이 될수록 자신을 지켜 주던 보호자가 노쇠해 독립적으로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방향’으로서의 바깥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방향이 옳다는 것’과 ‘그 말을 듣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누군가에게 세상은 단순히 나가면 되는 공간이 아니라 실패할 것 같고, 무너질 것 같고,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의 장소일 수 있습니다. 그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방향으로서는 맞을 수 있으나 그 방향으로 가는 과정이 생략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환자 분의 ‘의사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예민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의 치료 관계에서 서로의 속도가 맞지 않는다는 뇌의 정직한 신호입니다. 아이는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외부 세계에 대한 탐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음 진료 시간에 오늘 느끼신 서운함을 솔직하게 전달해 보세요.

“선생님 말씀이 맞는 건 알지만 제게는 그 말이 저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무섭게 들립니다. 선생님께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러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이미 치료 과정의 시작입니다. 내 두려움을 진료실에서 의사에게 말로 전달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듣는 것은 미지의 세계인 바깥으로 나가는 행위의 아주 안전한 연습입니다. 세상으로 나가는 첫걸음은 현관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누군가에게 나의 진실한 공포를 고백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권순재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보이사·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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