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도소 담장 위의 2030 - 법무법인 성진 김인호 팀장

 

10년 조직생활·범죄지식 활용

사기 총책 밝히고 합의 이끌어

 

“조직 일망타진·처벌 강화 보다

다시 빠지지않도록 ‘교화’ 필수”

지난 10일 오후 법무법인 성진 인천 분사무소에서 김인호(37·가운데) 팀장과 김진아(오른쪽) 법무법인 성진 대표변호사가 사건 의뢰인과 상담을 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지난 10일 오후 법무법인 성진 인천 분사무소에서 김인호(37·가운데) 팀장과 김진아(오른쪽) 법무법인 성진 대표변호사가 사건 의뢰인과 상담을 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지난해 11월 11일 인천 소재 법무법인 성진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20대 남성 A 씨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흰색 셔츠 차림으로 수척해진 A 씨 맞은편엔 50대 부부가 앉아 있었다. 스캠 사기 가해자와 피해자가 이렇게 대면한 것이었다. 부부 중 남편 B 씨는 A 씨를 향해 “왜 그랬어요”라고 거듭 따져 물었다. A 씨는 B 씨의 싸늘한 시선을 피한 채 “상황이 안 좋았다”고만 했다.

A 씨는 캄보디아 범죄단지에 머무르면서 B 씨를 상대로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을 통해 수천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국내에 송환돼 재판을 받고 있었다. 이날 양측의 조우는 합의를 위해 마련됐다. 마른 입술을 축인 A 씨는 “민사재판을 취소하고 합의해 달라”며 “정말 가진 돈이 하나도 없다”고 B 씨 부부에게 매달렸다. B 씨는 “돈을 날린 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잇몸이 다 녹았다”고 했다. 결국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A 씨와 B 씨 부부의 합의 현장을 주선한 이는 법무법인 성진의 김진아 대표변호사와 김인호(37) 팀장이다. 김 변호사와 김 팀장은 피해자 부부의 사건 의뢰를 받은 후, 피해를 신속하고 원만하게 보상받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조직의 말단에 불과한 A 씨는 수천만 원대 합의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었다. 김 팀장은 합의가 결렬되자 A 씨를 통해 조직 윗선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확보했고, 자체적으로 정보망을 가동해 총책을 특정한 뒤 수사기관에 제보했다.

김 팀장이 이처럼 사기 범죄조직의 동향과 행태를 빠르게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는 데엔 특별한 비결이 있다. 바로 그 스스로가 10년간 ‘조직’ 생활을 하면서 1세대 리딩방을 운영했던 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까지 범죄조직에서 일한 그는 경찰에 붙잡혀 2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출소 후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다 다시 범죄의 늪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김 팀장은 달랐다. 과거 담당 변호사가 “(교도소에서) 나와서 피해자들의 원만한 회복을 위해 새롭게 시작해 보자”고 권유한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로펌 사무실에서 송무·등사 열람 등을 도맡는 막내 직원으로 시작, 자신이 보유한 인적 네트워크 및 사기 범죄 수법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범인 잡는 탐정’으로 우뚝 섰다. 김 팀장은 11일 “과거에 대한 죄책감도 있는 만큼,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내 능력을 활용하고 싶었다”며 “피해자들이 최대한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직접 사기 총책을 가려내거나 분류하는 게 주 업무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오래전 조직에 몸담고 있을 때와 최근 조직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지역별 큰 조직을 중심으로 모여 범죄가 이뤄졌지만,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된 지금은 1개 조직으로 활동하지 않고 조직원들이 SNS로 소통하면서 점조직 형태로 활동하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특히 청년들로 구성된 ‘MZ 조폭’의 경우 수사기관의 추적이 쉬운 유선 연락 대신 SNS를 지능적으로 활용해 리딩방·보이스피싱 사기단을 조직적으로 운용한다고 했다.

지인이나 인맥이 없어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조직범죄에 뛰어들기 좋은 환경이 조성돼 있다고 김 팀장은 우려했다. 캄보디아 등 치안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동남아시아 국가로 떠나 범죄조직에 가담하는 사례도 꾸준히 접해 왔다고 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금융기관 계좌를 개설하는 단계부터 대포통장 활용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감시가 심해졌고, 거의 대부분 붙잡힌다”며 “범죄조직들이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고, SNS를 통해 조직원을 모집하는 관행이 굳어졌다”고 진단했다. 전문직·대기업 정규직·공공기관 종사자를 제외한 2030 청년들이 인생의 돌파구를 찾으려다 고수익 유혹에 빠져 해외 출국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김 팀장은 “국제적으로 캄보디아 범죄단지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미얀마 등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은 국가가 타깃이 될 것”이라며 “청년들이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고정관념·편견이 바뀌지 않는 이상 제2·제3의 캄보디아 범죄단지는 계속 나타날 것이고, 고수익을 노려 범죄에 가담하는 청년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팀장은 자신의 사례를 예로 들며 ‘교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이 범죄조직을 처벌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근본적으로 범죄에 빠지면 안 되는 이유와 범죄의 해악에 대한 교육 및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교도소에서 새로운 범행수법을 배우거나, 새로운 범행 파트너를 찾은 후 다시 범죄의 늪에 빠지는 청년이 너무 많다”며 “순간적인 오판으로 범죄에 빠졌더라도 다시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맞춤형 교화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노지운 기자, 노수빈 기자
노지운
노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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