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자세로/ 어떻게든 물 위에 뜨고/ 어떻게든 호흡하기// 어떻게든 물을 좋아하기/ 그것이 어린 내가 나이든 당신에게 배웠던 것// 누나 내일 또 놀자/ 수영장의 하류에서 아빠와 헤어졌다/ 사람은 나를 닮은 것을 사랑하게 되는/ 연약한 성질로 이루어졌다

- 연정모 ‘입춘’(시집 ‘조금 깨물고 몰래 버리기’)

동료 시인이자 교수인 김이 찾아왔다. 예의 유쾌함으로 서점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어 놓더니 묻는다. “나 오늘 입춘 인사받으러 왔는데 없어서 섭섭하네.” 무슨 소린가 물어보니 매년 입춘마다 출입문에 붙여놓는 ‘입춘첩(立春帖)’ 이야기였다. 깜빡했다.

유독 시린 겨울이었다.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건 부지기수인 데다, 삼한사온은 옛말이라는 듯 춥기만 해서 패딩 점퍼가 유니폼처럼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봄은 온다. 오늘도 발이 시리고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하지만, 괜히 봄 같다. 마른 나뭇가지를 유심히 보게 된다. 잎 나고 꽃필 거라는 상상에 즐거워진다. 올봄엔 어디든 꽃구경 가야겠다. 지난 한 달 더운 나라에 가 있던 선배의 설핏 그은 얼굴을 보면서 다짐하기도 했다. 겨울 다음 봄. 새삼스러운 순환 질서에 몸이 달아오르는 건, 지금 당장이 너무 고되기 때문이다. 그칠 줄 모르는 불황, 안팎으로 들려오는 심란한 뉴스들. 이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말 그대로 입춘대길 건양다경. 이제는 좋은 일과 기쁜 소식 좀 있어야겠다. 물속 어둠에서 벗어나 반짝이는 수면 위로 올라와 숨 좀 쉬고 매끄럽게 팔을 휘두르며 발장구를 치는 어린 마음으로 따뜻한 미래에 닿고 싶다.

부랴부랴 마련한 입춘첩을 팔자 모양으로 문간 위에 붙인다. 봄의 기운아, 길한 소식아, 이 아래로 한껏 들어오거라. 되도록 활짝 벌려 붙인다. 그 모양을 가만 지켜보던 직원이 알려주었다. “시인님. 입춘대길이 오른쪽, 건양다경이 왼쪽이래요.” 서둘러 다시 붙였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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