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국내 가상자산 2위 거래소 빗썸이 지난 6일 이벤트 당첨자들에게 보상으로 1명당 2000원어치 비트코인을 지급하려다 비트코인 2000개를 지급했다. 이렇게 오지급된 비트코인은 총 62만 개로, 시세로 환산하면 60조∼64조 원에 이른다. 빗썸은 오지급 물량 중 99.7%를 회수했지만, 이미 매도된 물량 중 125개는 회수하지 못했다고 한다. 문제는, 일부 당첨자가 오지급 코인을 매도하자 빗썸 내 비트코인 가격이 순간적으로 1억 원 근처에서 8100만 원 수준으로 급락했고, 겁을 먹은 일부 투자자가 헐값에 투매해 피해를 봤다.
이번 사고는 오지급 자체가 1차적 문제지만 더 우려되는 점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비트코인의 지급이 가능했는가 하는 점이다. 지난해 3분기 보고서상 빗썸이 보유한 비트코인은 4만2800여 개에 불과하다. 그러니 보유 비트코인 수량보다 14배나 더 많은 비트코인을 이벤트 보상으로 지급한 것이다.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은 과거 뱅크런과 유사하다. 법정통화로 금화나 은화와 같은 주화를 사용하던 17∼19세기에만 해도 은행들은 뱅크노트를 발행해 지급결제 수단으로 활용했다. 뱅크노트는 액면가만큼 주화가 보관돼 있다는 보관증서로, 무거운 주화에 비해 편의성과 안전성이 우수해 활용도가 매우 높았다.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으로 여겨지는 스웨덴의 스베리예 릭스방크(중앙은행)의 설립 배후에 뱅크노트의 부도가 있다. 1656년에 설립된 스톡홀름은행은 유럽에서 최초로 종이 증서인 뱅크노트를 발행했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은화와 동화를 법정화폐로 활용했는데, 은화 가치가 더 높아 은화는 보관하고 동화만 유통하게 됐다. 그런데 은화와 수평가치로 동화를 만들다 보니 동화가 거의 자동차 번호판만 해서 조금만 금액이 커도 말이나 마차로 운송해야 했다.
이에 착안해 스톡홀름은행은 동화를 보관하고 이에 비례해 보관증서인 뱅크노트를 발행해 유통시켰다. 그러자 편리한 뱅크노트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문제는, 지준금으로 보관된 동화보다 더 많은 금액의 뱅크노트가 발행되면서 뱅크런이 발생했고, 1664년 정부와 의회가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게 됐다. 그 와중에 1668년 의회가 직접 운영하는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인 릭센스 스텐데르스방크가 설립됐고, 이를 개명한 것이 현재의 스베리예 릭스방크이다.
한마디로 빗썸 사태와 스톡홀름은행 사태의 공통점은, 보유 자산보다 더 많은 수량이 거래될 수 있을 만큼 내부 통제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은행이나 증권사를 포함한 금융권 전반은 장부거래 방식을 쓴다. 거래 결과에 따라 현금이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일단 장부에 기록된 잔액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처리한 다음 영업종료 후 장부상 금액과 실제 보유 잔액을 맞춰 보는 ‘시재금’ 확인 정산 방식을 활용한다. 중앙화 가상자산거래소 역시 이 방식을 활용하는데, 문제는 이를 확인하는 내부 통제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다.
금융 시스템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17세기에나 있었던 이런 고전적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기본을 무시한 결과이다. 최근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 주체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그 인가 과정에서 가장 필수적 요소가 무엇인지 새삼 일깨우는 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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