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정치부 차장

친노(친노무현)·비노(비노무현) 갈등이 극에 달한 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가 취임한 2015년 무렵이다. 4·29 재보선마저 참패하자 당시 비노계였던 주승용 최고위원이 문 대표를 압박했고, 정청래 최고위원은 주 최고위원을 “공갈친다”고 비난했다. 주 최고위원이 격분해 뛰쳐나갔는데 유승희 최고위원은 이 와중에 백설희 씨의 ‘봄날은 간다’를 불러 주변을 당황케 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는 가사의 노래다. 정치권에선 ‘봉숭아학당 같다’는 조롱이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와신상담 끝에 두 대통령을 배출한 거대 여당이 됐지만, 고성과 비방이 난무하는 회의 문화만큼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민주당·조국혁신당의 합당 실행 계획이 담긴 대외비 문건이 유출된 뒤 회의 때마다 “밀실 밀약” “답정너 합당”이라는 성토가 쏟아졌다. 당청 갈등도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민주당 추천 인사에 불쾌감을 보였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정청래 대표가 특검 추천 같은 중요한 사안을 최고위원들은 물론 청와대와 소통 없이 결정한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정 대표는 취임 후 다수의 중도층보다 강성 지지층 중심의 정치를 해왔다. 반대를 예상하면서도 소통해 설득하기보다 줄곧 갈등을 감수하는 길을 택했다. 같은 당 의원들도 반발할 만큼 일방적인 방식이 많았다. 검찰·사법·언론 개혁을 추진했고, 국민의힘은 ‘내란정당’으로 몰았다. 권리당원 권한을 강화하는 ‘1인 1표제’, 조국혁신당과의 합당도 결국 핵심 지지층 목소리를 키우고 본인 입지를 다지기 위한 방안들이다. 지지층은 박수를 보냈을지 모르지만, 갈등이 축적되면서 더 많은 국민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 대표는 지난 8월 청와대에서 “생활 속 변화를 가져올 민생법안을 통과시켜 국민의 눈물을 닦아 드리겠다”고 했다. 그 말과 달리 민주당의 입법 시계는 6개월째 공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회가 너무 느려 일을 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서야 이틀 만인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비쟁점 법안 91건을 처리했다. 대통령은 매일 SNS로 부동산, 금리, 물가를 두고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데 집권 여당의 최고위에선 거드는 이를 찾기 어렵다. 집권 초 당청이 이처럼 엇박자를 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무엇보다 정 대표가 추진한 합당은 아무리 ‘민주통합론’이나 ‘이재명 정부 승리’로 포장해도 결국 ‘권력 투쟁’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어렵다. 본인 지지층과 흡사한 조국혁신당을 끌어들여 8월 전당대회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정략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당이 민생에 집중해야 할 때 당권이나 대권을 놓고 이전투구를 벌인 것은 온전히 정 대표가 초래한 일이다. 정 대표는 자신의 정치 미래, 강성 지지층의 박수보다 대다수 국민의 밥상과 안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유통구조를 개선해 농수산물 물가를 낮추는 농수산물 유통법 개정안,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을 보완하는 어린이놀이시설법 개정안 같은 법안들 말이다. 집권 2년 차 여당 대표라면 응당 해왔던 일이다.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권력 암투는 10여 년 전 ‘봉숭아학당’으로 족하지 않나.

김윤희 정치부 차장
김윤희 정치부 차장
김윤희 기자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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