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창수의 Deep Read - 日 중의원선거 관전법
‘일본형 포퓰리즘’ 심화… 기회요인·위협요인 공존으로 정권 역량 시험대 올라
‘다카이치 색깔’ 정책 급속 추진할 듯… 한·일관계 안정적 발전 위한 전략 소통 필요
일본의 정치 구조가 크게 변했다. 자민당은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316석을 획득해 압승했다. 단일 정당이 중의원 정수의 3분의 2를 넘는 의석을 차지한 것은 전후 처음이다. 연립 파트너인 일본유신회도 36석을 얻어 연립여당은 465석 중 352석이나 됐다.
이번 지각 변동의 특징은 ‘호헌 대 개헌’으로 오랫동안 대립해 온 전후 일본 정치 구도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이다.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회귀 등 ‘다카이치 색깔’을 선명히 할 수 있는 정책이 급격히 추진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경제가 정권의 발목을 잡을 수 있고, 개인플레이에 따른 인기가 얼마나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개인의 인기가 만든 대승
보수적 색채가 강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에 맞서 출범한 ‘중도개혁연합’은 현실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했다. 그 결과 167석에서 49석으로 괴멸하면서 존재감은 미미해졌다.
또한 이번 결과는 단순히 정당 간 세력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이미지 경쟁을 부추기는 ‘일본형 포퓰리즘’을 심화시켰다. 정책 논쟁은 사라지고 ‘사나에 지지’냐 아니냐의 단순한 구도만 선거를 지배했다. 정책의 실현 가능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이미지만이 영향을 준 선거였다.
자민당의 역사적인 압승은 첫째, 다카이치 총리의 인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본 국민이 다카이치에게 힘을 실어준 배경에는 날로 커지는 불안감이 큰 몫을 했다. 국제정세는 강대국이 힘을 과시하는 야만의 세계로 되돌아가고 있으며, 국내적으로는 물가 상승으로 소득이 줄어드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국면에서 다카이치의 “정책의 대전환” “확 바꾸겠다”는 발언이 통쾌하게 들린 것이다.
특히 젊은층에는 막힌 현실을 타개해 줄 수 있는 개혁자로 기대를 모을 수 있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SNS에서 다카이치를 응원하는 ‘사나카츠’ 열풍은 전 세대로 확산돼 압승의 배경이 됐다.
둘째, 선거 직전 공명당과 입헌민주당이 결합해 만든 중도개혁연합에 대한 불신도 컸다. 신당은 명확한 쟁점이나 대립 구도를 만들지 못함으로써 반(反)다카이치표를 흡수하지 못했다. 준비가 부족해 야당 후보 단일화가 진전되지 않은 점도 자민당에 순풍으로 작용했다. 이번 선거는 중의원 해산부터 투·개표까지 16일간의 ‘초단기 결전’이었기 때문에 야당 간 후보 조정의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구조적 불안정성
다카이치 총리의 정권 운영 역량이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이제부터다. 과반이 안 되는 참의원에서 법안이 부결되더라도 3분의 2가 넘는 자민당의 의석으로 중의원에서 재가결할 수 있다. 총리가 통과시키고 싶은 법안은 반드시 통과되는 구조가 됐다. 다카이치의 자민당 내 장악력은 물론, 야당과의 교섭력도 훨씬 강해졌다.
그러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시대와 달리 안정적인 ‘자민당 1강’이라기보다 ‘다카이치 1강’에 가깝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 첫째,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전 총리와 달리 ‘팀플레이’보다 ‘개인플레이’에 의존해 정권의 위약성이 존재한다. 이를 개선하지 못하면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그 예로 2009년 중의원 선거 당시 민주당이 300석을 넘는 대승으로 정권 교체를 이뤘지만, 결속을 유지하지 못해 분열한 사례를 들 수 있다.
둘째, 경제가 다카이치 정권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이번 선거의 대승으로 다카이치가 내세운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이 힘을 받았다. 그런데 엔화 약세와 금리 상승이 진행되는 가운데 돈을 푸는 정책이 시장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까. 재정 재건의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한 채 재정지출을 늘릴 경우, 추가적 금리 상승이나 엔화 약세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될 수 있다. 경기 상황이야말로 지지율에 영향을 주고 정권을 궁지에 몰 수 있다.
셋째, 이번 자민당의 압승은 ‘총리에 대한 기대치’에 불과하므로 지속성을 가질지 미지수다. 야마다 마사히로(山田昌弘) 주오(中央)대 교수는 “자민당 압승 배경으로, 선거가 ‘팬 활동’으로 변해가는 점을 꼽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카이치는 지난달 중의원 해산의 쟁점을 ‘다카이치 총리냐, 아니면 노다 총리냐’로 단순화시키면서 운명을 걸었다. 이 발언이야말로 ‘팬심’과 잘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팬덤 현상은 대체 인물이나 우연한 사건의 출현만으로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다카이치 색깔’과 한국
오는 2028년 참의원 선거까지 약 2년 반 동안 국정 선거는 없을 전망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내정과 외교 모두에서 적어도 2년 동안은 중·장기적인 정치 일정을 그릴 수 있게 됐다. 그는 선거 직후 9일 기자회견에서 ‘책임 있는 적극 재정’과 ‘안전보장’ 정책 등 자칫 국론을 양분할 수 있는 정책 추진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따라서 우파의 염원이고 ‘다카이치 색깔’을 선명히 할 수 있는 정책(안보3법 개정, 스파이 방지법, 헌법 개정)이 급격히 추진될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의 헌법 개정은 국회(중·참의원 3분의 2)를 통과하고, 국민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해야 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선거의 압승으로 개헌의 속도를 높이는 ‘신속한 결단’이 가능해졌다. 정치권에서도 자민당과 함께 참정당과 국민민주당이 개헌에 찬성하기 때문에 개헌 논의는 현실화될 것이다.
그러나 참의원은 여야가 팽팽히 맞서고 있어 국회에서 개헌 발의를 하기 위해서는 2028년 참의원 선거가 중요한 고비가 될 수 있다. 설사 개헌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국민투표까지 급격히 밀어붙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 국민은 헌법 개정에는 본능적 거부감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외교안보정책에서 ‘다카이치 색깔’을 선명히 하면 한국과 정서적으로 부딪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한·일 관계 전반에 먹구름이 오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교섭이 어려운 상황에 있고 중국과의 갈등관계가 지속하는 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제관계에서 더는 갈등의 전선을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본 정치권의 컨센서스다.
따라서 한·일 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국제관계에 대한 전략적 소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 오사카 총영사
■ 용어설명
‘전쟁가능한 국가’란 평화헌법 체제에서 제약받는 일본의 군사적 권한을 보통국가 수준으로 확대하자는 구상을 뜻함. 핵심은 전쟁을 국가의 권리로 인정하지 않는 일본 헌법 제9조로, 개헌 필요성 대두.
‘사나카츠’란 다카이치 사나에라는 이름과 ‘승리하다’는 뜻을 가진 카츠의 합성어로, 다카이치를 지지하는 보수층의 구호 혹은 정치 캠페인. 일본을 보다 적극적인 안보국가로 만들자는 흐름을 담고 있음.
■ 세줄요약
개인의 인기가 만든 대승: 자민당의 중의원 선거 압승엔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적 인기가 결정적 역할을 함. 이로써 ‘호헌 대 개헌’이라는 정치 구도는 종언.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는 ‘일본형 포퓰리즘’을 심화시켰다는 평.
구조적 불안정성: 지금부터 다카이치의 정권 운영 역량이 시험대에 올라. 개인기에 의존한 정권의 위약성이 존재하고, 경제가 발목을 잡을 수 있으며, 개인플레이에 따른 인기가 얼마나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
‘다카이치 색깔’과 한국: 다카이치는 자신의 색깔을 선명히 할 수 있는 ‘전쟁 가능한 국가’ 등 정책을 급격히 추진할 것. 한·일 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국제관계에 대한 전략적 소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