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설특집 - 명절 풍속도 변천사
달라지는 차례상 풍경
“올 설 차례 안 지낼 것” 63%
지내는 가구도 ‘반조리 구매’
“맞벌이라 부담” “밀키트면 돼”
마트선 나물·전 간편식 경쟁
설 명절 차례상 풍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장기화된 고물가와 핵개인화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상차림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특히 차례를 아예 지내지 않는 ‘노(No) 차례’ 현상이 뚜렷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상차림을 간소화하고 반조리 식품으로 제수 음식을 대체하는 경향도 뚜렷해지고 있다.
12일 농촌진흥청이 수도권 소비자 패널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9일 실시한 ‘2026년 설 명절 농식품 구매 행태 조사’에 따르면 올해 설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는 응답은 63.9%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설보다 12.4%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이유로는 여행 계획이 32.7%로 가장 많았고, 종교적 이유(25.4%), 차례 필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25.0%)이 뒤를 이었다.
차례를 지낸다고 답한 가정에서도 준비 방식은 간소화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차례 음식 준비 방식은 ‘일부 직접 조리하고 일부는 구매한다’는 응답이 61.8%로 가장 많았다. 차례 준비 시 반조리·완제품 구매 품목은 떡류가 46.3%로 가장 많았다. 전류 28.6%, 육류 10.0%, 나물류 9.6% 순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한 육아 커뮤니티 가입자는 “맞벌이라 명절 준비할 시간이 없다”며 “밀키트랑 전 세트를 주문하니까 1시간 만에 끝나던데, 예전처럼 못 돌아간다”고 썼다. 또 다른 가입자는 “양가 부모님과 상의해서 올해부터 차례를 안 지내기로 했다”며 “대신 가족끼리 여행 가기로 했는데 다들 훨씬 좋다고 한다”고 전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러한 인식 변화는 확인된다. 응답자의 40% 이상이 차례 문화에서 가장 시급한 개선 과제로 ‘차례상 간소화’를 꼽았고, 적정 음식 가짓수로는 ‘5∼10가지’가 가장 많았다. 차례상 비용 역시 20만 원 이하가 적정하다는 응답이 80%를 넘었다.
이 같은 변화는 장기화된 고물가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국물가정보가 4인 가족이 20여 가지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는 기준으로 비용을 계산한 결과, 올해는 전통시장에서 장을 볼 때 약 29만6000원, 대형마트는 약 40만6000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21년에 비해 5년 새 각각 23.0%, 18.0%씩 올랐다.
특히 먹거리 물가가 오른 영향이 컸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3일 발표한 ‘2026년 1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8.03(2020=100)으로, 전년 동월 대비 2.0% 올랐다. 농축수산물이 전년 대비 2.6% 상승하며 전체 물가를 견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쌀의 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18.3% 올랐고, 주요 명절 성수품인 사과 가격도 10.8% 상승했다. 축산물도 4.1% 올라 물가를 끌어올렸다.
핵개인화의 영향도 크다. 전후 복구기였던 1950년대에는 차례상이 대가족·공동체 중심 문화의 상징이었다. 지역과 집안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20가지가 넘는 음식을 직접 손질하고 조리해 상에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차례 준비 과정 자체가 가족 공동노동의 일부였다.
반면 올해의 차례상은 ‘외주화’가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조리 과정은 기업과 유통업체가 대신하고, 소비자는 필요한 만큼만 구매해 상차림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대형마트는 이러한 흐름에 맞춰 명절 전용 간편식과 반조리 상품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롯데마트는 오미산적, 동태전, 제수용 삼색나물 등 명절 상차림 품목을 온라인 사전예약 방식으로 판매한 데 이어, 냉동 전·완자·동그랑땡 등 반조리 제품을 중심으로 할인 행사에 나섰다. 직접 재료를 사서 손질하고 조리하던 기존 명절 준비 방식에서 벗어나, 필요한 메뉴만 골라 구매하는 소비 패턴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식품업계도 이 같은 흐름에 올라탔다. 하림은 설 명절 대표 음식인 떡국을 손쉽게 준비할 수 있도록 전용 육수 제품인 ‘떡국육수’ 2종을 출시했다. 사골을 10시간 고아낸 ‘진한사골’과 국내산 멸치와 해물 재료로 맛을 낸 ‘맑은멸치’로 구성된 제품으로, 물만 붓고 끓이면 완성되는 방식이다. 명절 음식의 핵심 과정이었던 육수 내기를 상품으로 대체한 사례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현대그린푸드는 명절 상차림 자체를 대체하는 전략을 내놨다. 공식 온라인몰에서 불고기·떡국·나물 반찬 등 명절용 가정간편식(HMR) 63종을 할인 판매하며, 명절 준비를 ‘장보기’에서 ‘주문’으로 전환하려는 수요를 공략하고 있다. 육류 반찬부터 나물, 국류까지 상차림 구성이 가능한 제품군을 한데 묶은 것이 특징이다.
노유정 기자, 이예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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